다니엘 4장 19.hwp
다니엘 4장 19~27절 느부갓네살 왕의 꿈 해석 제 2장면
4162052 이다니엘
바로 19절 시작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 이야기를 듣고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벙벙하고 마음이 번민하였다고 나옵니다. 이는 다니엘이 왕에게 비극적이고 불길한 미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저한 것입니다. 마치 의사가 죽을 병 걸린 환자에게 시한부 인생을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말해야 하는 중대한 내용이였고 왕이 빨리 말해달라고 하였기 때문에 다니엘은 꿈의 해석을 시작합니다. 앞서서 다니엘은 예비적 진술을 잊지 않고 말합니다. 19절 후반부를 통해 재난과 불행에게 벗어날 기회가 있음을 어필한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모습은 예언자의 모습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왕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죄를 짚어주는 역할입니다.
20절~22절에서 다니엘은 해석을 시작합니다. 나무는 왕을 의미하며 위대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앞서 말한 원우의 발표를 다 들으셨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23절~26절은 13~16절 내용을 다시 요약해주고 꿈 해석을 이어갑니다. 다른 점은 호격의 사용을 하여 왕에게 심각한 내용을 말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왕의 운명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정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5절을 통해 왕위에서 쫓겨나 동물처럼 살아가는 운명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정신착란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 착란증에 걸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드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쿰란에서 발견된 이야기는 테마라는 도시에서 병을 얻었고 10년동안 격리, 치료를 받아 유대 선견자에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내용에서는 다니엘 4장과 유사한 내용이 몇가지 발견됩니다. 나보니드의 기도문에서는 7년동안 질병에 시달리고 인간세상을 떠나 비정상적 생활을 하고 우상 숭배의 벌로써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후 고침을 받고 기도문에서 말하는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겸손과 존경의 자세를 취하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인해 학자들은 다니엘서와 문학적 관계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니엘서 저자는 나보니드를 느부갓네살로 대치시켜 신앙의 교훈을 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운명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6절은 순찰자들의 명령도 하나님이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임을 알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시인하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꿈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느부갓네살 왕의 나라를 견고하게 해줄 것이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27절에서는 다니엘이 심판을 피할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공의를 행하여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죄악을 속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첫째로 공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자선행위를 뜻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가난한 자에게 긍휼하라는 것입니다. 공의의 실제적 예를 알려준 것이지요. 아모스서 2장 7절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억압을 받으며 고난을 당하는 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27절을 통해 공로사상을 캐치해 내었는데, 전통 기독교 입장에서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사상이죠. 27절은 악행을 금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 통치하고 가난한자에게 긍휼을 베풀라는 주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자택일의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한 구원인 전통 기독교의 외침이 윤리나 도덕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절대 안됩니다. 27절에 나오는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하나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28절은 다니엘의 해석의 진실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꿈을 통해 계시된 계획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29절~30절은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유예기간이 지난 후에 이야기입니다. 왕은 이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왕은 이 열두달의 기간동안에 한 것이라고는 자신이 세운 나라, 왕국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자신을 칭찬하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바벨론 성의 입구를 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모형이나 복제품이 아닌 실제 성벽 자체를 살짝 복원만 한 문입니다. 1927년 페르가몬 박물관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1년동안 교만을 마구 키워갔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심각하게 말했는데 아무 쓸모없게 된 것입니다.
31절~32절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됩니다. 하늘의 순찰자들이 나라의 위가 너에게서 떠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왕권이 하나님으로부터 박탈되었다는 뜻과 왕권의 박탈이 지금 이 순간 성취되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32절에서 왕은 자신의 앞으로 예견된 추악하고 비참한 삶을 듣게 됩니다.
33절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그대로 실행이 됩니다. 본문에는 꿈에 나왔던 내용에는 나오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머리털이 독수리 털 같고 손톱이 새 발톱 같았다’ 이는 실제로 왕이 동물의 외형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왕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 짐승의 생활을 따라 사는 질병에 걸렸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위대한 왕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34절부터 마지막 절 까지는 느부갓네살 왕의 회복과 찬양에 대해서 나옵니다.
34절에서 7년 동안의 심판이 끝난 뒤에 느부갓네살왕이 다시 세상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온전히 하나님의 은총 덕택입니다. 7년동안 왕이 드디어 깨달은 것입니다.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찬양을 합니다. 지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총명이 다시 돌아 왔다는 것은 온전한 인간의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말합니다. 34절 후반부에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영원성은 하나님의 본성중 하나입니다. 이는 구약 성서의 창조 개념에 이미 들어가 있는 내용입니다.
35절~36절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절대성, 전능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거민(개역개정에서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는 분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절대 능력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은 전 우주적임을 우리는 35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왕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과 기적을 받았습니다. 36절을 통해 이성의 회복과 왕권이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전보다 더 강력한 권위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왕의 찬양과 감사의 내용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지상의 통치자, 그것이 대통령이든 위정자 이든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은 스스로를 파멸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37절입니다. 다니엘서 4장은 하나님을 향한 송영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왕의 겸손, 신앙 성숙을 나타내기 위한 문학적 고안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7년동안의 고통이 지나가고 왕권이 회복되었으니 나는 곧 죽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칭송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37절 후반부는 4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총 정리를 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4장을 읽으며 찾아볼 수 있는 신학적 메시지는 4장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께 속해있으며 어떤 위대한 왕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정해주신 역할만 감당하는 심부름 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2가지를 알 수 있는데 먼저 자기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시험을 겪고 하나님이 왕국의 통치자 이시며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에게 왕위를 허락하심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언제든지 끌어내리실 수 있으시며 깨닫는 자는 다시 회복시킬 수 있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역사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구약에서 아담과 하와의 자기 절대화, 신격화의 모습과 그에 따른 심판. 앗시리아 왕에게 내리신 심판, 교만한 두로 왕에게 주신 경고. 이러한 성경 속의 예시들을 통해 다니엘서 4장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메시지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27절에서 잠깐 언급한 내용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올바른 믿음을 위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공의 실천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선, 구제를 통해 구원에 도달 할 수 는 없지만 그리스도 인들의 삶속에 나타나는 외면적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웃을 향한 수평적 관계의 출발과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두 번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4장을 한마디로 요약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축복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고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죠.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었던 1년의 시간을 우리는 허비할 것이냐 깨닫고 돌아올 것이냐.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