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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머리글

1.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진지한 대화

- 과거의 역사적 사건 자체 vs. 현재 재생된 역사
: 이스라엘에 벌어진 사실들 vs. 구약 성서의 본문

: 일어난 역사 vs. 서술된 역사

2. 이스라엘의 역사 서술

1) 역사란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장소
: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

: B.W. Anderson – 성경은 실낙원과 득낙원 사이에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지는 보여주는 책
: 신명기적 역사서 (신앙 고백서, 신학서)

2) 왕국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
: BC 10 세기, 다윗과 솔로몬, J 문서

3) 역사적 위기와 경험 속에서
: 신명기적 역사

4) 현재 상황에 대한 실존적 해석
: 열왕기서 (포로기) vs. 역대기 (귀환사회)

3. 성경의 역사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신학적 해석

: 아합, 여로보암 vs. 요시아, 히스기아

CHAPTER 1. 문제 제기

I. 고대 서아시아의 왕국
- 왕권은 신으로부터

: 왕국은 분리되어 있는 두 우주를 연결
: 천상의회의 결정1

II. 이스라엘의 왕국

1. 카리스마적 왕국의 탄생 (사울)

- 왕국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신화적 이해가 없다. 

- 왕국제도를 절대적으로 신성하게는 보지 않는다.
: 늦은 왕국의 도입과 강한 저항 (삿 9.7-15; 삼상 8; 10.17-27; 12) 

: 예언자들의 비판
: 신명기적 역사

: 그러나 친왕권적 본문들도 (삿 17-21; 삼상 9.1-10.16; 11)
-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되고 은사를 받는 ‘카리스마’적 지도력

: 대 사사들과 같은

- 백성들의 총회로부터 공인 받는 ‘민주적’ (?) 절차

2. 제도적 왕국으로의 변이 (다윗, 솔로몬)

에타나 신화 : 위대한 아눈나키, 운명을 선고하는 이들,/ (그들은) 앉자 그 땅에 대하여 서로 상의한다./ … / 그 ‘어두운’ 사람들, 모두, 

아직 왕 

(šar-ra-am)을 세우지 아니하였네/ …/ 이 사람들을 위한 조언 (mi-it-lu-ku) 이 없어./ (그래서) 왕권 ([ša]r-[r]u-tum)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도다

./ (A-I. i [old Babylonian] 요약; ANET: 114 의 Speiser 번역; Kinnier Wilson 의 음역 1985: 30) : 

참조

, Min Suc Kee, ‘Semantic Development of mlk within the Council System of Ancient Mesopotamia’, M. 

Augustin and H. Niemann (ed.), Stimulation from Leiden. Collected Communications to the XVIIIth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Leiden 2004
 
(
Beiträge zur Erforschung des Alten Testaments und des Antiken Judentums; Vol. 54; Peter Lang; 2006) = 
기민석

, '고대 의회와 셈어 mlk’

구약논단, 17 (2005), 140-6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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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카리스마’와 ‘민주’(?)에서 ‘제도주의’로
: 주변 국가들과 보조

; 권력의 집중화와 체제의 완비 (사사들의 활약과 비교하여 보라)

- 다윗, 고대 서아시아의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요소
: 여부스 (예루살렘의) 조속의 ‘제사장-왕-형상’이 다윗에게 (창 14.17-24; 삼하 6)

; 왕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사장, 제의 중재자.

; 다윗 왕국의 신학자들은 고대 서아시아의 제와 이데올로기를 유입, 왕국 통치의 종교적 

합법성 추구 

- 솔로몬, 이스라엘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 그의 등극은 카리스마의 수여나 백성들의 동의와는 무관

; 왕국 대신들의 협력과 다윗의 결정 (왕상 1.43). 신진 정치 세력

; 다윗이 총애했던 밧세바의 아들. 제사장 사독과 궁중 예언자 나단, 요압의 라이벌 
브나야의 지원

. 요압과 아비아달이 추종한 아도니야를 물리침

: 본문에 야훼가 그를 임명했다는 기록, 백성들의 동의가 있는 기록이 없다. (참조, 삼상 11.15; 
삼하 

2.4; 삼하 5.3; 왕상 

 

 

1.45

 

 

)

 

: 고대 서아시아의 왕국형태로 변모

3. ‘이스라엘적’ 국가 형태와의 긴장

- 여전히 살아있는 ‘하나님에 의한 카리스마적인 왕 임명’과 ‘백성들의 총회에 의한 동의’

: ‘귀족적이고 독재적’인 국가 형태에 대한 저항
; 압살롬과 세바

: 솔로몬의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은 결국 왕국 분열을

- ‘백성들의 총회’ (council) 의 결정적인 결단
: 왕국을 받아들이고 (삼상 8), 반대로 왕권을 견제 (왕상 12.3-4; 르호보암)

4.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구약의 양면적 평가

- 긍정적 평가

: 제왕 시편들 (시 2; 18; 20; 21; 45; 72; 89; 101; 110; 144)
: 하나님이 승인하셨다는 다윗의 ‘왕위 등극사’ (삼상 16-삼하 5)

: 관직자와 세금에 대해 긍정적인 요셉 이야기
 

: 왕국 이전이 혼란의 시대임을 말하는 삿 17-21

: 왕을 가나안 땅의 위대한 정복자로 그리는 J
: 솔로몬의 왕위 등극을 정당화 하는 ‘왕위 계승사’ (삼하 9-20 + 왕상 1-2)

- 부정적 평가

: 최악의 인물이 지도자가 된다는 요담 우화 (삿 9.7-21)
: 사울 왕국의 탄생 (삼상 8-12) 이야기의 반왕권적 본문

: 예언자들의 비판
: 전통적 이스라엘의 의식을 살리려는 압살롬의 반란 (삼하 13-19)

: 솔로몬 사후 분열의 서곡이 된 세바의 반란 (삼하 20)
: 신명기 역사서 

- 부정적 평가의 특성

: 왕국에 대한 근본적 거부도 있지만, 지나친 권력 추구에 대한 비판도
: 단순한 정체 경제적 평가가 아니라 신학적인 평가

III. 연구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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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스마-민주적’ 사회 질서 vs. ‘왕조적-제도적’ 사회질서

: 12 지파로 구성된 지방 분권적 사회 vs. 1 인 중심의 중앙 집권적 세력

: 결국 ‘이스라엘’적 사회가 강력한 왕국의 힘에 굴복

- 그러나 지속적인 저항운동
: 예언자들과 역사 서술가

CHAPTER 2. 왕이 없던 시대의 이스라엘

I. 가나안 입주와 정착

1. 외부에서 내부로, 사막에서 농지로, 산악에서 도시로

: 비교적 늦은 왕국 도입, 가나안 이주 후 수백 년 후

1) 가나안 이주와 정착이 최종적으로 종결 된 후

: 점진적이고 복잡

; 매년 반복 되는 유랑민들의 이동과 정착 시도

: 처음에는 사람들이 적은 미개척지 산악, 평지는 이미 가나안 인들의 도시 국가
; 시간이 흐르며 서로 계약을 통한 평화 유지, 혹은 전쟁으로 땅 탈획

;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의 대결
; 가나안을 지배하던 이집트의 세력 약화, 점진적으로 정착

2) 여러 독립적 그룹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성장

: 성서의 전승은 모두 야곱의 후예로, 12 지파

: 정치나 인종적 결합이 아니라, 종교적 결합체

; 공동의 성소에서 야웨를 섬기며 공동의 제의   

; 해방 신과 조상 신의 동일화 과정
; 계약 공동체 
 
; 이 지파 동맹의 본질은 종교적
; 정치, 군사는 부차적, 위기 때만 다른 지파의 원조를 호소하고 ‘성전’ 

II. 대사사와 소사사

: 왕국 이전 가장 중요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사사 (judges, טפשׁ)

1. 소사사 (삿 10.1-5; 12.8-15)

: 재판과 판결을 통해 사법적 활동 (통치의 의미도?), 공통적으로 에브라임 지역
: 전쟁을 통한 구원 행위는 없다.

: 이스라엘 왕들의 명단과 유사한 기록
; 왕들의 전임자로서 간주

2. 대사사

: 웃니엘 (3.7-11); 에훗 (3.12-30); 삼갈 (3.31); 드보라 (4); 기드온 (6-8); 입다 (10.6-12.7),
삼손 

(13.1-16.31)

: 전쟁 영웅, 군사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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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는 ‘구원자’라 칭해 졌으나, 후에 신명기적 사가에 의해 ‘사사’로?

: 지파들이 특별한 위기에 처했을 때 부름 받은 카리스마적 인물

; 하나님의 영 임재
; 그러나 그들의 영웅화는 철저히 배제

;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구원

III. 사사 제도를 거부하려는 사회적 움직임

- 사사들의 활약, 기원전 13 세기 말부터 기원전 1020 년 까지 

- 사사들의 위기, 백성들의 환멸, 강력한 중앙 집권제 도입 세력 부상

: 종교적 타락, 대외적인 군사 위협, 사사들의 영적인 무능 (삼상 3.1)

: 블레셋의 지속적인 위협을 막기에는 효과적이지 못한 사사 제도
; 18.1; 19.1; 21.25

; 친왕권주의자의 목소리와 반 사사 제도 목소리

- 사사기에 나타난 왕국 도입 시도
: 기드온, 아비멜렉, 입다

1. 기드온 (삿 6-8)

- 미디안과의 전쟁 승리

: 미디안의 낙타와 침략 (6.4-5), 이스르엘 같은 평야 지대 위협 (6.2)

: 이스르엘 평야에서 므낫세 출신 기드온이 단 300 명의 군사로 전쟁 승리
; 사 9.4, 미디안의 날

: 대사사의 활동 영역은 자신의 지파 범위를 넘어 (7.23)
; 므낫세, 아셀, 납달리

- 전쟁 승리 후 왕으로 추대 (8.22)

: 이전 사사들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 그러나 기드온은 거절 (8.23), 하나님만이 왕

: ‘왕’이라는 칭호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영구적 정치 형태 추구

1) 기드온 보고의 전승사적 고찰

- 두 이름, 기드온과 여룹바알

: 기드온 - 6 장에 8 번, 7 장에 13 번, 8 장에 15 번/ 여룹바알 – 6-1, 1-1, 8-2

: 9 장에서 아비멜렉은 항상 여룹바알의 아들로, 기드온은 전혀 언급 않는다. 

 

: 전승 과정 가운데에 두 인물이 동일시?!

- 3 개 층으로 구성된 전승 

 a) 기드온과 300 명의 군사의 용맹한 전투 (7.7, 16)
 b) 기드온의 고향 오브라 주변 지파들이 전쟁 참여 (7.23), 므낫세, 아셀, 납달리

 c) 기드온이 ‘전 이스라엘’의 사사, 전쟁에도 ‘모든 백성’이 참여 하려 했다 (7.1 이하)

- ‘단 300 명’과 ‘전 이스라엘’사이의 이음새 – 7.3, 5
: 계획적이고 단계적인 감축 (7.4-6)

: 신명기 사가의 신학적 논조
; 군대 수를 줄이고 하나님의 능력 극대화

2) 이스라엘의 신정 통치 사상: 야웨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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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대 신명기적 개작이 아닌, 왕국기 이전의 고유한 신정통치 사상

: 삿 8.22 – 기드온을 왕으로 추대하는 백성들, 신명기 사가의 고유한 언어 특성이 없다.

; ‘다스리다’ -   ךלמ가 아닌 לשׁמ
; 왕국기 이전 신정 통치는 하나님 만이 ‘왕’ (ךלמ)

; לשׁמ 은 신명기에 단 한 번, 열방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치 (신 15.6)

; 신명기 사가의 역사 속엔 수 12.2, 5 에만 – 동요르단 쪽 왕들의 통치

; 신명기적 

용어가 아니다

- 요청을 거절한 기드온의 신학적 답, 야웨가 다스린다는 것은 후대 신명기적이 아님 (8.23)

: 왕국기 이전에 신정 통치 사상 있었다!
; 이스라엘의 왕국기를 지연시킨 결정적 요소

: 역사성 있는 상황

a) 백성들의 총회의 추대, 삼상 11 사울의 경우처럼

; 둘 다 승리의 군사적 지도자, 옛 전승의 내포 가능성

b) 총회의 진행 과정 모두 일치 – 사울 (삼상 11), 다윗 (삼하 2.1 이하; 5.1 이하)

; 야웨에 의해 임명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백성들의 총회의 추대

c) 기드온의 거절은 신학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분위기 때문

; 사울은 사무엘로 대표되는 옛 질서와 싸워야 했던 외로운 투쟁자

3) 집으로 돌아온 기드온 (8.29, 30, 32)

- 평안하고 부유한 말년, 그러나 그의 70 아들들은 세겜의 부담감을 주는 존재

: 인간적 권력을 포기한 기드온과 대조

: 아직 신정통치를 포기하고 인간적 통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2. 아비멜렉 (삿 9)

1) 왕이 된 아비멜렉 (1-6, 22-57 절)

- 최초의 왕위 등극 사건
: 세겜에서  לשׁמ 가 아닌 ךלמ 

: 엄청난 피의 학살 (70 이복 형제) – 세겜의 파괴와, 백성의 몰살, 자신의 치욕스런 죽음

- 3 년 만에 실패한 왕국

: 세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함
: 이스라엘 왕국 역사나, 역사적 신학적 전통과 아무 관계 없는

- 신명기 사가의 역사적 신학적 주제가 없는

: 9.23-24, 56-57 – 한 번도 ‘야웨’가 등장 하지 않는 해석
: 가나안 도시 국가를 따라 생겨난 세겜 군주의 한계와 불화, 파멸

: 절대 권력을 원하는 왕과 공회의 임무를 지닌 신하들 사이에 일어난 정치적 갈등

- 기드온 이야기 뒤에 위치하여 생기는 신학적 의미 
: 야웨가 주신 임무에만 충실하였던 기드온과 행실이 포악한 아비멜렉

: 왕의 자리를 사양 vs. 포악한 욕심으로 왕이 됨

2) 요담 우화 (8-15 절)

- 여룹바알의 막내 요담은 아비벨렉이 그의 형제들을 살육할 때 살아 남고 그림신산에서 연설

a. 요담 우화의 문학적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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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담 우화는 아비멜렉 이야기로부터 문학적으로 분리
: 아비멜렉 이야기는 산문체 vs. 요담 우화는 운문체

: 스스로 왕이 되려 vs. 나무들이 왕을 추대
: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왕 vs. 나무들 중 가장 무익한 가시나무가

: 특정인 거부 vs. 일반적 왕권에 대한 거부

- 15b, 후대의 편집
: ‘레바논의 백향목’ – 왕을 찾아 나선 나무들?

; 전통적 식물 우화에서 우월한 왕을 주로 상징 (왕하 14.9 참조)
: 요담 우화의 배경은 생산적 경작지 이지 레바논 산지 까지는 아님

: 15a 의 일인칭 시점이 갑자기 15b 에서 삼인칭으로!

- 15b, 요담의 연설과 우화를 연결하는 편집적 시도
: 57 절은 15b 와 연관하여 요담 우화를 ‘저주’로 이해 

; 49 절의 불 심판도 15b 의 불 모티브와 연관
: 시적인 요담 우화와는 달리 15b 는 산문체 요소

: 15b 의 ‘그러지 아니하면’은 불분명한 의미
; 20a 를 거의 문자적으로 모방

; 편집적 흔적, 세겜에서의 비극적 사건에 대한 복선

; 가시나무는 왕이 된 아비멜렉, 불에 타버릴 백향목은 백성들

b. 요담 우화의 신학적 메시지

- 15a, 핵심적 메시지

: 가시나무가 자신의 ‘그늘’에서 쉬라는 불가능한 제안 – bitter irony, black humour
; ‘그늘’은 왕의 보호 기능 상징 (애 4.20; 고대 서아시아의 제왕 이데올로기)

- 왕권에 대한 철저한 비판 의식, 조롱

: 왕권을 거절한 세 나무는 유용하고 생산적인 나무들 (올리브, 무화과, 포도)
: 쉽게 받아들인 가시나무는 무익하고 해가 되는 존재
 

; 사회에 긍정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가시나무만이 정치 권력을 

: 백성을 위해 긍정적 결과를 가져 올 왕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내가 어찌 버리고” (9, 11, 13 절) 의 반복
; 유익한 행동을 저버리고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제도의 시작 암시

c. 요담 우화의 역사적 배경

- 우화 (fable, allegory) 는 사회 비판적 기능.

- 요담 우화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은?

: 농경민적 배경

; 유목민적 배경은 아니다.
; 유목적 전통의 레갑인의 철저한 농경 거부 (렘 35.6 이하)

: 왕과 왕국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억압당하고 착취 당하였던 경험의 소산
; 극단적 거부

; 이스라엘 왕국 후기는 아닐 것, 호세아나 신명기적 사가의 왕국 비판과 무관
; 치열한 정치적 대결 속에서 나온 투쟁의 수단?

; 솔로몬 시대? (왕상 12.4). 대건축 공사와 물자, 노동력 동원
: 귀족적인 자기 신뢰, 강한 자신감, 성숙한 자의식

; 저자는 농민 지도층의 대변인?

d. 사사기 9 장의 편집

- DtrN (율법적 신명기 사가)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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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 6 절은 왕권에 비판적인 요담 우화로부터

; “나아가다” – 나무들이 왕을 세우기 위해 나아가듯
; “모든” –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를 왕으로 선택 했듯

: 왕이 되어달라는 나무들의 반복된 요청 (8, 10, 12 절) 과 거절 (9, 11, 13 절)

; 8.22 이하 기드온의 단호한 거절과 주제적 대비

: 제도로서의 왕권에 대한 원칙적 부정은 DtrN 의 신학
; 인간을 통치할 자는 오직 야웨 뿐; 왕국은 백성들이 스스로 나아가 만든 범죄

: 7 절 ‘들어라’, 축복의 산 그리심산 (신 11.29 이하, 27.12 이하)

;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한 이들만 하나님이 들으신다 (사 1.15; 58.1-4; 렘 7.16; 

11.11, 14; 14.12)

: 16b-19a

; 세겜 사람들과 기드온을 대조
; 왕위를 사양 했던 기드온의 70 아들을 죽임

; 기드온 여종의 아들을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선택 (18, 23 절)
; 아비멜렉과 세겜 멸망의 원인은 그들이 선택하여 세운 피와 폭력의 왕국 때문

; 기드온에 대한 배은망덕 결과, 세겜과 아비멜렉의 범죄에 대한 인과응보
; 풍요롭게 말년을 보낸 기드온과 수치스럽게 죽은 아비멜렉

3. 입다 (삿 11)

- 길르앗 장로들에 의해 백성의 장관 (ןי ִצ ָק) 과 머리 (שׁאֹר)가 됨

1) 장관 (ןי ִצ ָק, qatsin)이란?

- 구약에 총 11 번 등장. 어근 הצק는 ‘판결하다, 결정하다, 실행하다’.

- qatsin 은 유력한 군사 지도자

: 수 10.24 의 ‘군장’들; 사 1.10 의 ‘관원’은 도시의 군사적 우두머리 (고모라의 백성과 병행인데 
여기서 백성은 군대

); 사 3.6-7 의 ‘관장’; 사 22.3 의 ‘관원들’은 군사 지도자; 미 3.1, 9 의 

이스라엘의 ‘치리자’

; 잠 6.7 의 ‘두령’; 단 11.18 의 야전 사령관; 사 22.3 …

2) 머리 (שׁאֹר, rosh) 란?

- 구약에 약 100 회 등장, 이중 2/3 가 포로 후기 문서에
: 한 사회 공동체의 우두머리, 즉 한 가족이나 한 사회 집단의 인솔자

: 두 종류; 출생을 통해 친척들과의 관계 속에 획득, 공동체의 선택에 의해 

- 일반 백성들의 지도자, 한 도시의 정치적 지도자

3) 길르앗의 지도자가 된 입다

- 처음 장관직을 요청 받으나 그의 소극적 태도로(11.7) 머리의 역할까지

- 다른 사사들과 다른 점

: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임명 없이 장로들과의 협상으로 

: 범 국민 적인 지도자가 아니었다 (비교, 아비멜렉 9.22, 25)
; 사사기 사사들의 활동 보고에서 유일

: 대사사 (구원자, 장관) 의 역할과 소사사 (재판/행정, 머리)의 역할

; 대사사의 활동 기록이 전형적 (40, 80 년…) (3.11, 30; 5.31; 8.28) 그러나 
소사사는 구체적

, 그런데 입다의 경우 구체적인 6 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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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 전쟁 전문가
; 다른 사사들은 직업이 있으나, 입다는 원래 싸움 전문가

; 영의 임재가 그의 군사적 기능을 발휘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 이스라엘 야웨 전통의 모습을 잃은 지도자
: 길르앗 장로들이 탁월한 능력 있는 자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왕국 탄생의 서막 

CHAPTER 3 사울 왕국

I. 사울 왕국 탄생의 세 가지 전승

- 삼 7-12: 이스라엘 왕국의 탄생, 사울의 왕 등극

: 내용이 비 통일적
a. 미스바 전승 – 삼상 10.17-27

; 지파들의 제비 뽑기. 강한 반 왕권적
b. 에브라임의 라마 전승 – 삼상 9.1-10.16

; 사무엘의 기름부음. 아버지 암당나귀를 찾으러 간 이야기. 친 왕권적
c. 길갈 전승 – 삼상 11.1-15

; 암몬에 대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사울의 승리, 길갈에서 왕국 설립
; 하나님의 신에 의해 감동된 군사 지도자. 

1. 길갈 전승 (삼상 11.1-15)

- A. Alt : 왕국 형성은 내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 위협을 가한 블레셋, 즉 외부적 요인 때문

- 블레셋

: 기원전 1200 년경 북쪽으로부터 동쪽 지중해 해안으로 이주 해 온 해양민족
: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의 전환을 가져옴 (삼상 13.19-22)

: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퇴각한 기원전 11 세기 중엽에는 실질적 정치력 장악
: 이스라엘 중심부로 진입 시도 (삼상 10.5; 13.3 이하)

- 당시 이스라엘

: 지파동맹만으로는 역부족
: 훈련된 직업 군인이나 군사 지도 체제가 없었다.

: 삼상 4 에서 기원전 1050 년에 아벡 (Aphek)에서 블레셋에 대패. 법궤 상실. 실로 파괴

- 암몬과의 전쟁 후, 그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 인정 받은 사울을 백성들은 왕으로 추대, 외부의 침략을 박을 
군사적 대표자가 된다

.

1) 삼 11 의 문학 비평적 분석

- 가장 역사성이 있는 본문

: 이스라엘은 남서쪽의 블레셋과 (삼상 13.1 이하) 동쪽의 암몬의 위협 속에  

- 삼상 11 은 앞 장 9.1-10.16 의 역사적 연속으로 보기 어렵다
: 사울은 이미 왕으로 선출, 그러나 11 장에선 밭에서 소를 모는 평범한 농부 (11.5)

: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블레셋이 아닌 암몬과의 전쟁

 

- 비 역사적 요소

: 3 절의 일주일간의 침공 유예기간은 위급한 전쟁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 8 절 군사의 숫자들은 매우 과장

- 하지만 역사적 흔적 유지
: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울 (6 절)은 대사사 연상 (삿 3.10; 6.34; 14.6, 9; 15.14)

; 호전적인 카리스마적 군사 지도자 탄생을 예고하는 전형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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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소를 취하여 각을 뜬다 (7 절)

; 삿 18.29 과 마리 (Mari)문서도 보여주는 경고 행동 

(1)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 (1-11 절)

- 대사사 같은 사울
: 3 절 9 절의 שׁיע 는 군사적 지도자의 모습을 잘 보여줌
: 사사기의 ‘거룩한 전쟁’과 같은 순서

; 하나님 신의 감동(6a) – 야웨의 두려움(7b) – 지파들의 소집(7b) – 놀라운 승리(11) 

- 영웅담
: 농부 출신 사울의 위대하고 완벽한 승리

: 사울의 군대 그룹이나 왕궁에서 전

(2) 초대왕으로 등극한 사울 (12-15 절)

- 사울의 왕 등극은 그의 암몬족 격파의 결과

- 12-13 절은 삼상 10 장의 전승을 전제하는 편집
: 12 절은 10.27 을 전제 – 사울이 모든 지파에서 왕으로 인정 받은 것은 아님

: 13 절은 사울이 아닌 야웨에게 전쟁 승리가 전가
; 1-11 절에는 야웨보다는 영웅적 사울이 강조

- 14 와 15 절 간의 모순

: 14- 나라를 새롭게 하자 / 15- 사울을 왕으로 삼고 나라를 건립하자
: 14- 사무엘 주도 / 15- 온 백성이 주도

: 15 절에 사무엘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는 10.17-27 에서 주도적 역할/ 1-11 에는역할없음
: 7 절과 14 절의 ‘사무엘’은 후대의 편집 – 왕위를 ‘새롭게’ 하는 사건으로 만듦

: 14 절은 삼상 10.17-27 과 삼상 11 을 연결시키려는 의도로 삽입
: 14 절은 15 절의 많은 단어를 선취

- 15 절, 전쟁 후 비로소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는 사건

: 아마도 사울은 먼저 자신의 베냐민 지파에서 왕으로 추대되고, 이 후 다른 지파의 동의
: 백성들의 열의와 하나님의 임명 (하나님의 신 감동)은 이스라엘 왕국의 도입이

 ‘민주적’이며 ‘카리스마’적임을 말하는 것

2) 삼상 11 의 문학적 분석 결론

- 1-11, 15 절 (12-14 절 제외)이 사울의 암몬 전쟁 승리와 왕위 등극에 대한 본래 전승

: 사사나 장관 혹은 ‘머리’가 아닌 ‘왕’이 되었다는 것이 독

: 사사 시대로 부터 왕국기에는 아무 단절이 없는 

; 옛 사사들의 전승과 유사, 역사성 내포
: 길갈이 아직 이스라엘 지파의 종교적 중심지 일 때

- 12-14 절은 후대 편집

: 사무엘의 등장
: 사울의 왕위에 반대 세력이 있음을 암시. 사울의 겸손한 인간성 강조

: 사울 왕국은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는 DtrG(H)의 신학

- 사사의 전통 계승
: 카리스마적인 구원자 임명과 민주적 절차를 통한 선택

: 사울은 사사 시대와 왕국기의 전환기적 인물

- 사울 왕국
: 이념적으로 고대 지파 동맹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하나의 군사 왕국

;  제도나 조직, 혹은 세습을 통한 왕국이 아님
: 사울의 주 임무는 통치가 아니라 전쟁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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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2. 라마 전승 (삼상 9.1-10.16)

- 앞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학적 단일체
: 삼상 7-8 에서 사무엘은 전국적으로 유명인, 그러나 사울은 그를 전혀 모른다.

; 7.15-16/ 10.18

: 왕을 달라는 백성들을 돌려보낸 사무엘 (8.22)이 왕을 기름 붓는 9 장과 연결 될 수 없다.

; 8.2 는 10.17, 즉 왕을 요구하는 백성을 다시 미스바로 불러 비난하는 연설과 연결 

- 역사서술? 민담?
: 사울이 당나귀를 찾아 돌아다닌 지역 살리사와 사알림은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9.4)

; 효심 많은 사울이 열심히 찾으러 다녔다는 민담적 요소
: 작은 것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큰 것을 찾아 돌아온다는 민담적 요소

: 여러 긴장과 비 일관성
; 야웨와 하나님 교차 사용/ 사무엘 혹은 하나님의 사람, 선견자/ 선견자는 숩에 
거주하는 것 같지만

, 다른 한편으론 특별한 목적으로 방문한 자

: 두 개의 층 – ‘사무엘’ 이름을 쓰는 층과 ‘선견자’ 혹은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는 층

- 본래의 민담

: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 나선 사울이 익명의 선견자 혹은 하나님의 사람을 나 이스라엘의 지도자 
nagid ( ָנדי ִג)로 선택

; 사무엘, 기름부음과는 관련이 없는

: 핵심은 10.6-7
; 하나님의 영을 체험한 사울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지도자가 되었다

- 이 민담의 선견자 혹은 하나님의 사람은 널리 알려진 사무엘로 대치

: 원래 전승이 사무엘의 선견자적 능력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고려된 이야기로 
확대 

(9.15-17, 20-21) 

: 사무엘은 그가 준비한 제의적 식사 모임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울을 소개. 좋은 자리와 좋은 
음식은 그를 최고의 지도자로 생각했다는 것

; 하나님의 계획이 철저히 수행되고 있다는 전승 

: 이 후 사울은 기브아의 숙부에게로 가고 비밀 모임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 사무엘 민담의 정황
: 블레셋의 위협 (9.16)

: 적들 모르게 사무엘은 특별한 사람들만 초청, 비밀 모임
: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무엘이 사울이 지도자 ‘나기드’가 될 것을 알림 (9.15 이하)

; 블레셋의 공격때문에 공경에 처한 이스라엘의 탄원을 하나님이 들으심

3. 미스바 전승 (10.17-27)

- 비 통일적 요소

(1) 21bβ-23, 24aβ, b – 가장 옛 전승, 고대 민담

: 21-24 절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

(

~['²h'-lk')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

~['²h'-lk')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 사무엘은 아무 관련 없고, 모든 행동의 주체는 ‘모든 백성’

: 이 백성들이 24 절에서 왕에게 갈채를 보내며 왕의 만세를 외침

: ‘모든 백성’ (~['²h'-lk'반복 강조, 이스라엘 초대 왕 등극에 전체 백성 동의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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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하나님이 선택 (22 절) 

: 여호와께 묻고, 여호와가 구체적으로 지명
: 키가 큰 우월한 인물 선택

(2) 17-18aα, 19b-21bα, 24aα, 25-27 – DtrG/H 신명기 사가의 편집층

: 17-18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

: 19-21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

: 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

: 25-27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 사무엘이 주도, 공개적인 제비 뽑기로 사울은 왕으로

: 제비뽑기는 적절한 방법이고, 모든 지파 참여

: ‘나라의 제도’를 선포하고 성소에 둔다 – 하나님이 왕국 탄생의 증인

- 집에 돌아 온 사울의 군사적 조치
: ‘하나님께 감동 된 유력한 자들’은 이스라엘에 예전엔 없었던 정예 부대

- 모든 백성이 사울 왕국에 동참한 것은 아님

: 일부는 사울을 멸시

; 편집적인 기능

; 26 절, 사울이 기브아 집으로 가고 11 장을 준비 시킨다.
; 27 절, 반대자들을 소개, 11.12-14 와 연결

; 이들 세력을 부정적으로
 

; 사울과 함께 한 이들은 하나님께 감동된 자. 사울은 하나님이 선택 

; 선택 רחב 는 신명기-신명기 사가의 신학 내포. 주어는 하나님

- 친사울적, 친왕권적 편집

: 11.13 – 사울 왕국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 선물

; DtrG/H 신학과 일치
; 10.26-27, 11.12-14 를 통해 사울 왕국의 합법성 변호

- 9.2b 를 통해 라마 전승 (9.1-10.16)과 미스바 전승 (10.17-27) 연결

(3) 18aβ-19a – DtrN 의 마지막 편집 층

: 18-19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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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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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 이스라엘 백성의 왕국 요구 자체를 비난, 사울 왕국을 부정적으로

: 인간의 제도.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을 버린 (סאמ) 행위
; רחב – סאמ 의 반대 개념

: 구원자 하나님에 대한 배신 행위

- DtrN

: 제도로서의 왕국 자체를 거부

: 왕국은 야웨 통치에 대한 인간의 간섭

: 18aβ-19a 은 DtrN 에게 소급되는 삿 6.8b-9a 와 거의 일치
; 구원사 회고

; 예언자 책망 연설의 형식

4. 사울 왕위 등극 전승의 편집

- 독립적이고 상호 대립적인 이야기들이 편집되고 새로운 신학이 첨가

(1) DtrG(H)

- 옛 전승들을 결합하여 사울 왕국의 적법성 강조

: 하나님이 인정 한 왕국
: 사울은 효심이 지극하고, 겸손하며, 용모가 준수, 용감한 전사

: 사울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불량인

: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 받았고 (9.1 이하), 한번 더 백성들에게 인정 (10.17 이하), 암몬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 후 왕으로 확실한 보증 

(11.1 이하)

- 9.2b; 10.17-18aα, 19b-21bα, 24aα, 25-27; 11.12-14 

(2) DtrN

- 왕 요구 자체가 배교
- 10.8, 18aβ-19a

: 10.8 은 13.7b-14 의 사울 범죄를 준비

II. 이스라엘 왕국 탄생의 내적 요인: 사사들의 연속적 타락과 종교적 관습 황폐 (삼상 8)

- 외부적인 정치 군사적인 요인만이?

: 중앙으로의 정치 권력 집중에 대한 저항 운동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청한 삼상 8 장

: 사사 시대에서 왕국기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과정이 야웨와 그의 백성의 관계 속에

: 강한 반왕권적인 후대 편집

1. 삼상 8 의 문학 비평적 분석

- 전체적 전개가 혼란스럽고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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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야웨는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에 찬성 (7a)

: 곧바로 왕 제도 거부하는 사무엘 지지 (7b-8)
: 장로들의 요청을 들어주라고 사무엘에게 명령 (9a)

: 사무엘을 통해 왕 허락했지만(10-18), 그 백성(장로들 X) 은 사무엘에게 순종 안 함 (19a)
: 왕을 세우라는 세 번째 명령, 하지만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 (장로 x 백성 x) 을 돌려보낸다

(22) 

- 혼란스런 사고 전개, 친/반 왕권적 견해가 섞여있다

: 오랜 전승과정 속에 여러 번 재해석 

1) 1-5 절

- 장로들이 왕을 요청하는 1-5 절과 ‘왕의 제도’를 말하는 11-17 은 서로 다른 문학체

- 8.1-5 는 옛 전승

: 사무엘의 두 아들의 이름 (요엘, 아비야), 그들의 악행, 활동 장소 (브엘세바)
: 신명기적 신학 용어가 없다

: 사사로 등장하는 두 아들의 악행은 삼상 12.2 의 내용과 차이
: 신명기 사가는 사사 시대를 삿 17.6 이나 21.25 처럼 악하게만 보진 않는다.

: 그러나 1-5 는 사사의 타락이 왕국 도래의 촉매임을 말한다. (친 왕권적)
: 왕국 설립의 정당성 변호 – 사사의 타락, 장로들의 주장은 정당.

- 라마에서 열린 장로 회의

: 사무엘에게 그의 두 아들 고발, 왕을 요구 (4-5 절)

: 적 때문이 아니라 사무엘이 늙었고 브엘세바에서 사사하는 두 아들의 악행 때문 (3, 5)

; 즉 종교적인 문제가 왕국 형성의 일차적 요구

: 총회

; 사무엘이 장로들이 모인 총회의 우두머리 (?)
; 사사로서 백성의 총회와 하나님 사이의 중개자

: 구약 성서의 ‘장로’

; 삼상 8 의 장로들은 매우 정치적인 역할

; 전체 이스라엘의 대표
; ‘왕국’을 도래하게 한 안내자

; 삼하 5.3
; 북쪽 지파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 붓고 왕으로

; 삼상 4 의 장로들은 군사적 역할
; 4.3 에서 장로들은 전쟁 승리를 위해 법궤를 가져 올 것 명령

; 삿 11.5-11 의 장로들도 전쟁 시 역할
; 암몬의 길르앗 침공 때 장로들이 입다를 대려 와 군대 장관으로 임명 

; 룻 4.1-12
; 내적 질서 수호자, 성문에서 재판 업무

- 사사직 계승

: 1 절 – 늙은 사무엘이 두 아들에게, 브엘세바에서 활동

: 삿 9 에서 기드온이 아들(?) 아비멜릭에게 사사직 계승 뒤이은 두 번째 경우
: 사사직 계승 가능 그러나 아들 사사들은 모두 부친의 훌륭함을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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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유사한 엘리 제사장의 경우 (삼상 2-3)

; 두 아들의 악행과 (2.12-17, 22-25) 그들을 죽이기로 한 하나님의 계획은 삼상 4 를

준비 

(법궤 빼앗김)

;  어떤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은  (2.27-36)  삼상  22 의   제사장   대학살과   아비아달이

구조된 사건 예고 

(특히 2.31-33 절) 

- 엘리의 경우와 유사한 사사인 사무엘의 아들들의 죄악

: 엘리의 경우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예고

: 새로운 사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제도인 ‘왕국’의 탄생
;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해 전통적인 사사시대 붕괴

: 장로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5 절) 군사적 요인이 아닌, 사사의 타락
; 왕은 전통적 사사의 기능 전수 (

WnjeÞp.v'l.)

: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라 (삿 8.23), 사람이 통치하는 왕국

; 이스라엘 전통 질서 붕괴, 고대 서아시아 체제로 편입

2) 10-22 절

- ‘왕의 제도’ (11-17 절)는 본래 독립적

: 11 절의 

%l,M,êh; jP;äv.mi

 (왕의 제도)는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 문체나 내용이 8 장에서 이질적

: 역사적으로 실제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왕의 조약에 기초
; 편집 과정을 거쳐 현 위치에

- ‘왕의 제도’는 이스라엘 보다는 주변 국가의 실정 반영

: 병거부대와 말 사용 (11)은 가나안에 더 잘 알려짐 (삿 4.3; 5.22)

; 국가 시대 이전의 이스라엘은 이런 군사 체제가 없었다.

:  천부장 오십부장 임명하는 왕의 특권  (12)  이나 향료와 요리 노동하는 여자에 대하여 구약은
아무 정보가 없다

: 좋은 토지와 포도원, 감람원을 취하여 신하에게 주는 왕의 권한?

;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왕상 21)는 왕이 강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매입하려던 것 

; 삼상 22.7 – 불법!

- 삼상 8.11-17 이 솔로몬 시대의 것? 반봉건적 가나안의 것!
: 기원전 18-13 세기의 Alalak 우가릿 문헌과 유사, 이스라엘 기원이 아닐 것

2. 삼상 8 의 신명기 사가의 신학 - DtrN 의 편집

- ‘왕의 제도’는 본래 이스라엘 왕국 탄생과 무관, 이를 부정적으로 만들려는 편집

: 긍정적인 왕국 탄생을 부정적인 것으로, 그래서 가나안의 반봉건적 왕의 제도를 인용

- 18 절: 예언자들의 심판 예언에 자주 등장 하는 ‘그 날에’ (aWhêh; ~AYæB;) 사용

- 6 절: 장로들의 왕 요구를 ‘악한’ 일이라

- 8 절, 역사 회고
: “다른 신들” (~yrI+xea] ~yhiäl{a/) 은 전형적 신명기 사가의 어투
; בזע (버리다)와  דבע(섬기다) 라는 동사가 “다른 신들” 과 함께 등장

; 신 7.4; 수 24.16; 삿 10.13; 왕상 9.9
: “이끌어 냄” (הלע) 도 신명기 사가의 글에 자주 등장

- 20 절: 야웨의 ‘거룩한 전쟁’ (삿 4.14; 삼하 5.24) 에서 야웨를 왕이 대신
: 왕에 의해 야웨의 독점적인 구원 행위가 방해. DtrN 에게는 이스라엘의 본질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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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DtrN 의 신학
: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적 전통에 그 뿌리

; 왕권을 거부한 기드온
: 사사시대에 뿌리를 내린 지파 동맹의 신정주의 통치 이념

3. 삼상 8 의 분석 결론

- 사사들의 부패와 직권 남용

: 다른 사사가 아닌 다른 전혀 새로운 제도 왕국을 갈망
: 삼상 3.1 – 야웨의 말씀과 환상이 없는 사사들의 영적인 무능력

III. 삼상 8-12 장의 편집사적 연구

: 12 장은 8 장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왕국 건설에 대한 일련의 보고

; 옛 전승 간직, 그러나 DtrN 에 의해 광범위한 편집

1. 삼상 12 의 언어학적 연구

- “사무엘의 연설”

: DtrN 이 왕국을 부정적으로 서술 할 때 사용한 기술이. 
: 사무엘의 입을 빌어 반왕권적 신학

- 연설의 장소에 대해 침묵

: 다른 곳에서도 DtrN 은 연설의 장소 침묵
; 수 23.1-2/ 삼상 12.2 – 고별 연설 이유는 연로한 나이 때문

- 12.6a, 7-15 의 구원사적 회고

: 문학 유형상, 야웨와 그의 백성 사이의 ‘법적인 논쟁’
; 예언자들이 즐겨 사용, 미 6.1-5 와 매우 유사

- DtrN 의 신학적 용어

: 9 절, ‘(야웨를) 잊다’ (חכשׁ) 라는 동사는 예언서 외에 신명기에서 율법과 관련 속에 등장
: 10 절, ‘죄-억압-외침-구원’의 도식은 신명기 사가의 독특한 역사 이해

; 백성의 외침이 죄의 고백 (삿 10.10)
: 이 외에 많은 언어적 표현이 신명기 사가의 것 (특히 DtrN)

2. 삼 12 의 신학적 메시지

- 전체 4 부분으로 (2-5; 7-15; 16-19, 20, 22-25)
: 20 절 제외하곤 모두 “그리고 이제” (ה ָתּ ַע ְו) 로 시작

1) 2-5 절, 법적 변론 (수 24; 룻 4.1-12)

- 원고는 이스라엘 백성, 피고는 사무엘, 증인은 야웨

: 소송 내용은 지금까지 지도자로 살아 온 사무엘의 품행

- 3 절, 사무엘과 ‘기름부음 받은 자’가 병행

: 사무엘은 무흠
; חקל(취하다, to take) 자주 등장 – 왕의 제도에도 (8.11-17)
; 전제 군주와 비교, 대조, 새로운 왕권 도입 비판

: 백성과 장로들이 내세웠던 이유, 즉 사사들의 타락은 근거 없는 것!

2) 6a, 7-15, 법적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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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야웨가 과거 선조들과 현재 백성들에게 베푸신 구원 행위 (7)

- 7-11 절, 역사 속에 증명된 구원사의 지속적 구조 (죄-억압-외침-구원) 
: 이스라엘 초기 역사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돌보셨다.

- 12 절, 핵심

: 암몬의 나하스의 침공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 왕을 구원자로 요청
; 결국 왕국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 할 수 밖에 없다.

3) 16-19 절, 야웨가 보내신 기이한 자연 현상

- 17 절, 그 목적

: 왕국탄생은 야웨가 보시기에 큰 죄악
: 자연 현상을 통해 큰 두려움을 갖게 하고 죄를 고백하게 (19)

- 기이한 자연 현상은 일종의 증인 진술

: 그래서 피고인 야웨와 사무엘은 무죄, 원고는 이스라엘 백성은 패배

4) 20, 22-25 절, 사무엘의 교훈적 연설, DtrN 의 역사 신학 설교

- 기원전 587 년의 대 파국 현실을 전제
: 미래의 희망을 열어놓는다 (22, 24). 그러나 계속 악을 행하면 멸망 (25)

3. 삼상 8-12 에 나타난 신명기 사가 (DtrG 와 DtrN)의 신학

- 신명기 사가의 역사에서 왕국에 대한 입장은 통일적이지 못하다.

1) DtrG/H

- 왕국 건립에 대한 옛 전승들을 받아들여 야웨가 인정한 사울 왕국 서술

: 삼상 8.1-5; 9.1-10.16; 11.1-11, 15)

- 왕이 없던 때는 사람들이 자기 좋은 대로 하던 혼탁한 시기
: 삿 17.16; 18.1; 19.1; 21.25

- 왕국이 도입되어 타락한 사사 시대는 지나가고 올바른 사회 도래, 적들로부터 보호

- 백성들의 왕 요구는 정당, 사울은 열렬한 지지 가운데 왕 등극

: 친사울, 친왕권적 태도는 신 17.14-20 의 ‘왕의 율법’에 근거 

2) DtrN

- 사울 왕국 탄생 보고에 (삼상 8-12) 광범위한 편집 
: 8.6; 12.12 – 야웨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의 직접적 통치자 이어야, 유일한 왕

: 8.13; 12.13 – 지상의 왕은 야웨가 아닌 인간이 마음대로 선택한 
: 10.18aβ-19a – 왕 요구와 사울의 선택은 종교적 배신

- 12 장 – 가장 반왕권적

: 야웨의 무죄와 백성들의 죄, 법적 논쟁

: 왕권에 비판적인 이전 문서들과 관련

; 요담 우화 (삿 8.8-15); “왕의 제도” (삼상 8.11-17)

- 신학적 문제 제기
: 야웨 한 분 만이 구원의 역사를 이끈다 (10.18aβ-19a; 12.8-11)

: 백성은 지상왕이 통치 할 것을 요구 (8.2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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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그러나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 (12.14)

: 사울과는 달리 다윗이 축복 받은 것은 율법에 대한 신뢰 때문 (왕상 3.6, 14; 11.33, 38; 14.8)

IV. 왕국 탄생 전승에 나타난 사울 왕국의 ‘카리스마’와 ‘민주성’

- 신명기 사가 편집 이전의 세 가지 전승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 카리스마적, 민주적 요소 위에 사울 왕국 탄생

; 하나님에 의한 왕의 선택과, 백성들의 전적인 동의

: 라마 전승, 하나님의 영 임재로 인해 예언 현상에 참여 하는 카리스마적 사건 (10.10)

: 길갈 전승, 영을 경험 후 (11.6) 암몬과의 전쟁에 승리 (11.11)
  

: 미스바 전승,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환호 (10.24)
: 사사들의 타락으로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 왕 요청, 비밀 모임에서 사무엘이 사울 을 소개 할
때에도 

30 명의 장로들이 동석

: 길갈에서도 사울의 왕위 등극을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11.15)

: 제비 뽑기 에서도 ‘모든 백성’은 만세를 부르며 동의 (10.24)

V. 사울 왕국의 한계점과 실패 원인

1. 제도적이고 영속적인 정치, 군사적 조처의 미흡

- 카리스마에 기초한 사울 왕국의 한계점

: 내제적 허약성

; 지속적인 엑스터시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는 지도자가 존재 가능?
; 카리스마적 행동이 끝나면, 외교나 군대 제도, 전략 같은 체제 유지에 취약

: 초기에는 주변 적들을 쉽게 물리침

; 요나단의 지휘로 블레셋을 (삼상 14)
; 카리스마에 의존 한 거룩한 야웨 전쟁

: 시간의 흐르면서 블레셋의 위협을 원천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

; 이스라엘이 카리스마에 의존, 블레셋은 정돈된 군사 조직

: 물리친 동쪽의 암몬도 (삼상 11) 곧 조직적이고 호전적인 적군이 되어 위협

 

- 발전 없는 내부적 요인

: 군사적 요충지 부재,  경제 개발을 위한 국제 교류 부재,  무기 열세  (삼상  13.22),  군사 대비책
부재 

(길보아 전투 삼상 28-31)…

: 지파 동맹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였다.

2. 옛 질서와 새 질서의 갈등

- 사울도 왕국의 제도나 왕조를 견고히 하기 위한 초보적 노력

: 왕위 세습

; 사울의 가족들이 왕국의 주요 역할
; 아들 요나단 아래 유력한 자들을 (삼상 14.52)

; 조카인 넬의 아들 아브넬을 군대 우두머리로 (삼상 14.50 이하)
; 그의 아들 이시보셋이 잠깐 왕이 되기도 (삼하 2.8-4.12)

: 봉토 약속 (삼상 22.7)

- 그러나 직업 군인의 탄생은 내적 갈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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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민족적 성격의 징집 군인 vs. 잘 훈련된 직업 군인
: 직업 군인은 시대적 요청, 옛 질서와 대립

3. 지파 동맹의 지지 상실, 또 다른 내적 갈등

- 사울과 사무엘 간의 갈등

: 왕국과 지파 동맹 사이의 갈등
: 왕과 종교 지도자의 갈등 

; 왕은 하나님의 임명으로 – 둘 사이의 갈등은 부정적 영향

- 갈등의 원인은 사울이 전통적 지파 동맹의 원칙 무시
: 사무엘은 지파 동맹의 테두리 안에서 왕국 건설 하려 

: 사울이 결혼 한 남자마저도 징집 

- 종교적 문제, 사무엘과의 갈등
: 사울이 전통적인 ‘거룩한 전쟁’ 원칙을 어겨 사무엘이 질타 (삼상 15.3, 9)

: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제사 집례 (삼상 13)
; 왕과 종교간의 오랜 갈등

; 사울은 왕의 제의적 역할 강화 시도
; 지파 동맹의 세계냐 아니면 새로운 질서냐

- 사울에 대한 부정적 전승 형성

: 하나님의 영이 아닌 야웨의 악한 영을 받은 사울 (삼상 16.14; 19.9)

CHAPTER 4. 다윗 왕국

- 이스라엘 정치 권력 발전과 성장에 대한 매우 중요 정보 제공

- 진정한 의미의 역사 기록이 시작 

: 역사 행동의 주체로서 인간을 보다
; 인간 상호간의 행동으로 인식, 그들 경험에 대한 가치 평가와 해석 시도

: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는 인간이며,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과 간섭을 통해 간접적으로 

; 기적이나 초월적 개입이 아닌
; 이런 역사에 대한 자의식은 다윗 때에 처음으로

I. 다윗에 관한 전승들

1. 다윗의 왕위 등극사 (삼상 16-삼하 5)

1) L. Rost – 1926 년, 왕위 등극사와 왕위 계승사를 분리, 독립된 두 작품의 구조적 통일성을 간파

: 다윗이 사울 왕궁에 등장, 사울을 파해 도망 다니는 다윗, 사울 사후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는
다윗

, 다윗이 왕이 된 사건, 예루살렘 정복, 대제국 건설 과정 등이 내용이나 문체상으로 밀접

2) A. Alt – 1930 년, 범위, 기록목적, 신학적 특징

3) A. Weiser – “다윗과 그의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합법적 인정”

: 다윗은 신실하게 하나님 순종,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 선택은 정당

- 친 다윗적 신학 용어의 반복적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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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고 (וֹמּ ִע), 사울을 버리고 (סאָ ָמ), 다윗을 선택 (ר ַח ָבּ)

: 다윗은 경건한 신앙인, 사울의 죽음에 아무 죄가 없음 계속 강조, 사울에게 놀랍게 도 관대, 그의

죽음 애도 
: 반대로 사울은 늘 부정적으로 묘사

- 다윗의 왕위 등극은 역사적 필연, 하나님의 철저하신 인도하심

- 저작 의도

: 사울의 아들이 아닌 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 일어 날 수 있는 정통성에 대한 시비를 잠재우기

위해
: 아마도 다윗이 남과 북의 왕으로 등극한 후 예루살렘에서 왕국 신학자들이 기록

2. 다윗의 왕위 계승사 (삼하 9-왕상 2)

: 다윗에 이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 L. Rost (1926)

: 적법한 계승자가 아닌 솔로몬의 왕위 등극을 신학적으로 논증하기 위한

; 법궤설화 (삼상 4-6; 삼하 6); 나단신탁 (삼하 7); 암몬과의 전쟁 보고 (삼하 10.6-11;

12.26-31) 를 아는 자가 편집
; 왕상 1.27-30!

: 솔로몬의 왕위 등극에 대한 시비를 해결, 합법성 보장

; 어머니 밧세바는 헷사람, 한때 우리야의 아내, 왕위 계승과 관련 혼란 (왕상 1)
;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 미갈의 불임 (삼하 6.16, 20b-23)

; 영원한 다윗왕조, 나단 신탁 (삼하 7)
; 적법한 후계자 암논과 압살롬이 어떻게 자격 상실

: 이 뒤에는 하나님이 (삼하 11.27; 12.1, 15, 24; 17.14)

- Rost 에 반론, 사실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 삼하 20 과 왕상 1-2 사이의 문학적 관련성 의심
; 전자는 다윗의 통치, 후자는 솔로몬 통치 시작을 말한다.

: 삼하 11, 13, 15 에 있는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비판적 진술 – 친솔로몬적?

- 주제의 다양성

: E. Würthwein- 서로 다를 두 개의 층 존재 

; 기본층은 다윗-솔로몬에 저항, 솔로몬 왕국 정당성 입증하려는 이차층이 결합

; 이후 여러 층의 신명 사가들의 편집 존재?
: F. Crüsemann - 

신명기 사가의 편집층 존재 부정

; 친다윗적, 반솔로몬적 작품
; 궁중의 지혜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솔로몬 왕을 겨냥한 공개적 비판

- 통일되지 못하는 ‘다윗 왕위 계승사 연구’ 역사

: 하지만 문학적 비-통일성은 지지

: 매우 복합적인 문학적 신학적 시각 내제

: 법궤설화 마지막은 (삼하 6) 나단의 신탁 보고 (삼하 7)와 신학적으로 밀접한 관련 

;  전자는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되찾아 오는 것,  후자는 왜 다윗 왕조가 영원성을

보장 받게 되었는지 설명

; 다윗 관련 전승들은 다윗 왕조의 미래에 대한 보장과 관련 있음을 명심!

II. 사울의 몰락과 다윗의 상승 (삼상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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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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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 (삼상 16.1-13)

- 사무엘이 사울과 결별 후 다윗을 기름 부음. 사울을 기름 부었던 사건과 유사 (삼상 9.1-10.16)

: 사무엘이 기름 부음
: 배경은 희생제사 축제

; 모두 비밀스럽게 진행
: 이새의 아들들이 차례로 선보인 것과 사울이 제비 뽑기로 선택된 것 (10.17-27)

; 처음에는 발견되지 않다가 나중에 선택 (사울, 다윗 모두)
: 사울처럼 다윗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 (10.9; 11.6; 16.13)

- 사울 기름부음과 차이점

: 사울 이야기는 통일성이 그러나 다윗 이야기는 통일성이 없다.

; 희생제사 장면과 기름 부음 장면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 희생제사는 뒤에 전혀 언급 없다.

; 모든 장로들을 희생 제사에 초대 (4-5) 그러나 뒤에는 이새와 그의 아들들만

- 사울을 의도적으로 폄하

: 용모가 좋은 큰 아들 엘리압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 용모자 준수했던 사울을 떠올리게 함 

- 후대의 편집 기록?!

: 다윗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예기치 않은 기름부음

; 백성들의 총회를 거쳐 기름부음은, 사울의 기름부음 전승을 각색 (삼하 2 와 5)

: 용사 출신 다윗이 백성의 추대를 받고 왕이 된 후 그의 왕 등극 정당성을 위해 편집
; 하나님의 영을 경험한 카리스마적 인물, 백성들의 민주적 동의를 얻은 왕

; 희생 제사 장면도 다윗의 등장을 앞장의 내용들과 연결하기 위해

: 사울에 대한 기록과 다윗의 전승을 연결, 불순종한 사울과 순종적인 다윗 대조

2. 다윗과 사울의 만남 (삼상 16.14-23)

- 다윗의 등장에 대한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 전승

- 만남의 동기
: 다윗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남 (16.16), 악신 들려 우울한 사울을 위해 연주 

- 두 인물이 대조

: 다윗은 하나님의 신이, 사울은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악령이
: 다윗은 언제나 야웨의 도움을 받는 성공적인 인물

; 하나님이 함께 계심 – 다윗 왕위 등극사의 주요 주제

- 만남의 또 다른 동기 
: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소년’ (16.18)

; 사울에게 소개된 다윗은 16.1-13 과는 전혀 다르다

: 사울의 눈에 띄어 ‘병기를 든 자’가 된다 (16.21)

; 사울의 신뢰를 얻어 가깝게 된다. 사울의 직속 부하. 역사적 신빙성

- 다윗은 그의 매력과 용맹으로 대중의 인기
: 사울의 라이벌로 등극, 둘간의 갈등, 다윗은 그에게서 도망

3.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삼상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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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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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투
: 전승은 블레셋의 군사적 우위를 강조

: 다윗이 형들에게 식량을 주기 위해 전쟁터에 갔다가 상황 목격. 왕을 설득
: 겁에 질린 사울과 다윗이 대조

: 전투에서 승리 후 에야 비로소 사울은 다윗의 이름을 알게 된다.

- 역사-문헌적 문제점

: 삼상 16 장과 연대기적으로 연결이 어렵다
; 다윗은 이미 사울에게 소개되었는데, 그가 전혀 모른다.

; 17 장 내에서도 그는 두 번씩이나 같은 말로 소개 (31 이하, 55 이하)

: 골리앗을 주인 이는 엘하난? (삼하 21.19) (대상 20.5 참조)
; 골리앗 이야기는 다윗과 사울이 만난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독립적 이야기

: 삼상 17 은 여러 전승들이 복잡하게 얽힌 무학적으로 비통일적인 문헌

; 다윗이 블레셋과 잘인 영웅적인 전투에 대한 회상
; 시간이 흘러 전설작인 무서운 거인 골리앗이 등장 (?!)

: 다윗의 영웅다움이 주제

- 다윗은 골리앗을 죽임으로 사울의 신임

: 요나단과 미갈을 알게되는 동기
: 미갈과의 결혼은 전쟁 승리의 결과 (18.17-21)

4. 다윗과 사울의 알력과 갈등

- 다윗의 탁월함과 인기는 (18.5) 사울이 그를 장치적 라이벌로 인식하게 함

- 이스라엘 백성의 다윗과 사울에 대한 평가 – 삼상 18.7; 21.11

: 다윗과 사울 갈등 장면 사이에 삽입
: 사울이 마음을 바꾸어 다윗을 싫어하게 된 실질적 이유 (18.19)

: 이 노래는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당시 회람되던 노래

-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기로 결심
: 수금연주 할 때 두 번이나 (18.1 이하; 19.9 이하)

- 다윗 왕위 등극사의 극명한 주제

: 다윗과 사울의 대조적인 모습. 다윗의 왕위 등극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

5. 다윗, 메랍, 미갈

- 사울의 첫재 딸 메랍을 주겠다 약속
: 다윗을 파멸시킬 미끼 (18.17)

: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는 영웅적 행동을 보여야
: 감손한 다윗, 딸을 다른 곳에 시집 보내는 사울 (참고, 삼하 21.8)

- 둘째 딸 미갈도 미끼로

: 미갈은 다윗을 사랑
: 요구한 것 보다 두 배 많은 양피를 베어온 다윗, 결국 미갈과 결혼

- 주제는, 다윗은 겸손하고 능력 있는 자

: 사울의 아들 요나단, 딸 미갈 모두 다윗 사랑, 백성들도
: 사울만 다윗을 미워하는 유일한 사람 (18.29)

6. 다윗과 사울의 최후 결별 (삼상 19.1-17), ‘도피 사화’ (Fluchtgeschich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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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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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사울의 추격으로 세 번에 걸친 죽음의 위기를 받게 되나 결국 도망에 성공

: 처음은 요나단의 도움, 다음은 창을 다윗이 피하여, 그리고 미갈의 도움으로
: 다윗과 사울은 또 대조적으로

; 전자가 민첩한 육체와 안정된 정신을, 후자는 목수심에 불타는 불안정한 정신

- 요나단은 주저 없이 다윗을 돕기로 결정
: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사울

: 사울에게 다윗 변호, 죽이지 않기로 약속 받음

- 다시 딸 미갈을 통해 위기 극복
: 다윗의 거듭된 전쟁 승리로 다시 위기 (19.8)

: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집으로 도피
: 미갈의 지혜로 창문 통해 도피

- 완전 결별

: 결별의 원인은 다윗에게 있지 않다.
: 사울은 철저히 혼자.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 중

7. 사울의 비참한 최후 (삼상 29-31)

-  사울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고,  블레셋의 왕 아기스의 봉신으로 피해있던 다윗은
사울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

: 매우 사실적이고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자료

; 지형적 이유로 사울은 자신의 모든 군대를 소집시키지 못하였다 (31.7)

- 블레셋의 봉신으로 있는 다윗
: 사울과의 전쟁에 나가야 할 운명, 민족에 대한 배신을

;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불신, 그를 배제

: 시글락으로 내려가 아멜렉과 전쟁하는 다윗,

: 신학적 메시지 -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자를 보호, 하나님의 역사 진행 방식

-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전쟁 (30.1-13)
: 길보아 전투는 전쟁보다는 쓰러져 가는 영웅의 최후를 묘사하는 데에 집중

; 사울의 군대는 흩어지고, 아들 셋은 죽고, 사울은 자살
: 전투 패배로 가주지 손실 (31.7)

- 장사될 곳이 없이 죽은 사울

: 불행한 인생
: 하나님의 심판

: 반면 새롭게 선택 받은 다윗은 남쪽에서 아멜렉을 이기고 승리의 개가

III. 남쪽의 왕이 된 다윗 (삼하 1-3)

1. 사울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반응

- 블레셋은 전쟁에 승리했으나 약화

: 다윗이 전면에 나설 기회. 그러나 자중

-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 사울은 죽었지만 북쪽은 여전히 사울에 충성

; 때문에 기뻐 않고 백성들과 함께 슬퍼함 (삼하 1.18-27)
; 사울 집의 생존자들을 환대

- 친다윗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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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다윗이 기뻐하였을 것이라는 인상 제거

: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계획하거나 죽자마자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 사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

: 하나님의 임명을 받았지만 백성들의 인정이 있기 까지 인내

2. 남쪽 지파들의 왕으로 등극하는 다윗 (삼하 2.1-4)

- 시글락에서 남부 팔레스타인의 중심지 헤브론으로 이동. 남쪽 유다인의 왕으로 등극

- 블레셋과 봉신관계인 다윗이 그들의 허락을 받고 유다로 갔는지는 불분명

: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 다윗이 하나님께 질문. 하나님이 헤브론으로 갈 것을 명령 (1 절)

- 이미 유다의 장로들과 새로운 왕국 건설에 모종의 협의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 다윗이 요청?

: 블레셋이 중부를 장악한 후 이제 남부를 공격할 것이 예상됨. 
; 블레셋의 봉신인 다윗을 내세워 침입 방지 위해, 다윗의 요청 수락?

: 다윗은 시글락에 있으면서도 유다의 장로들과 꾸준한 관계 유지
; 다윗이 그들에게 전쟁 전리품을 보낸 적도

; 다윗의 두 아내는 남쪽 출신

- 블레셋은 다윗의 왕 등극을 반블레셋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을 것

: 다윗은 그들의 믿을 만한 봉신
: 전이스라엘이 아니라 유다만의 왕 

; 이스라엘을 영구히 분단시켜 약화될 것 기대 

- 종교 중심지 헤브론의 마므레에서 왕 등극 (삼하 2.4)

: 사울 왕국처럼 카리스마적이고 민주적 토대 위에서 탄생
: 사울 왕국과의 차이

; 사울은 지파 동맹의 옛 질서를 토대로, 왕국내의 남북의 차이를 없애려 노력
; 다윗은 고대 지파 동맹 전통과 관련이 적고, 남쪽 유다만을 중심으로 

; 각 지파의 파병군이 아닌, 자신의 개인 용병에 의지

3. 북쪽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시키는 다윗

- 통치권을 북쪽으로 확대시키려는 시도를 하였을 것이다.

: 한편 사울 추종자들은 북쪽에 그들의 왕국을 재건하려 노력 하였을 것

: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의 전쟁 (3.1)

- 사울의 집

:  사울 아들 중 유일한 생존자 이스보셋은 블레셋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요단 동편 얍복강 남쪽

길르앗 지방의 마하나임에서 왕국 재건

; 요단 동편, 갈릴리, 사마리아 지역 중심의 불확실한 영토 (삼하 2.9)

: 사울의 사촌 아브넬이 (삼상 14.51) 군통수권 장악

: 그러나 종교적 토대가 없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임명도 없었다.

- 두 집안의 전쟁

: 아브넬이 다윗 왕국을 무너뜨리려 하였을 것이다.
: 다윗의 대리인 요압과 아브넬이 에브라임과 유다 경계선 사이에서 전쟁 시작

: 강력한 요압의 군사에 아브넬은 패배 (삼하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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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3.1, 다윗 왕위 등극사의 신학적 메시지

- 대제국 건설을 위한 다윗의 계획

: 삼하 3.2-5, 헤브론에서 낳은 다윗의 여섯 아들

; 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야, 스바댜, 이드르암

; 약해진 사울과 강해진 다윗 대조

: 남쪽 출신의 두 아내, 아히노남과 아비가일

; 유다 서남부 지역과 동맹을 맺고 인정 받는 계기

: 압살롬의 어머니 마아가는 갈릴리 호수 동쪽 그술의 왕 달매의 딸
; 아람왕의 딸과 결혼한 것은 정략적

; 더 큰 왕국에 대한 꿈
; 다윗은 헤브론에 있으면서 북쪽 지파 너머 지역과 교류 시도

-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관계 악화 (삼하 3.6-39)

: 아브넬이 사울의 첩 중 하나를 취하는 사건

; 왕의 첩을 취하는 것은, 왕위 계승을 위한 소유권 선언 (삼하 16 압살롬 참조)

; 왕권에 대한 도전에 이스보셋은 그를 맹 비난

: 아브넬의 변명

; 이스라엘의 왕위를 하나님이 사울의 집에서 다윗의 집으로 옮기셨다. (3.10)

: 아브넬이 다윗과 권력 계승에 대한 비밀 협상 시작

; 사자를 보내 다윗을 도와 이스라엘 전체 왕이 되도록 돕겠다고 선언
;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돌려 보내라고 요청

; 사울 집안과의 혈육적 관계를 강조하여, 북쪽 지배권의 당위성을 과시
; 북쪽에 대한 호의를 보여 인심 얻으려

; 이스보셋과의 단절, 다윗에게 직접 충성 맹세
;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사자를 보내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자고 제안

- 아브넬의 죽음

: 다윗과 협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

; 자기 형제의 피에 대한 복수

; 전쟁시 그의 동생이 아브넬에게 죽임 당함 
; 헤브론 성문에서 죽음

; 동시에 다윗과 아브넬의 밀착 관계에 대한 두려움

: 요압의 살해는 범죄처럼 묘사

; 다윗은 예의를 다해 장사
; 다윗에 대한 신학적 평가

; 그의 죽음에 다윗은 책임이 없다 (3.27)
; 요압에게 죽음의 저주를 하고 심히 애통

IV.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다윗 (삼하 4.1-5)

1. 사울 왕조의 완전한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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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이스보셋의 죽음

: 그의 두 장수,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살해
; 다윗에게 보상을 받기 원함

; 오히려 다윗에게 죽임을

- ‘다윗 왕위 등극사’ 저자의 의도
: 다윗은 사울 집안의 멸망에 관계없는 자이다.

; 삼하 16.9, 다윗이 사울 집안의 원흉이라는 소문이 있었음

; 삼하 21.1-14,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사울의 가족 7 명을 넘겨 죽임

: 요나단의 아들 절음바리 므비보셋 이야기 삽입 (4.4)
; 다윗이 환대한 인물 (9.13) 

; 다윗에게 순종한 이는 환대, 적대한 이스보셋은 죽음

2.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다윗 (삼하 5.1-4)

-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다윗
: 유일한 사울 후손 생존자 므비보셋은 제외

: 사울의 사위, 7 년 6 개월 동안 성공적으로 헤브론에서 왕
: 다윗의 지속적인 친사울적 행동

- 북쪽 장로들의 입장

1) 친족적 이유 (1)
; 북과 남은 정치적 긴장관계는 있으나 동일한 문화, 전통, 종교의 같은 민족

2) 군사적 이유
; 다윗은 뛰어난 용사 (2a), 블레셋을 막을 수 있는 자

3) 야웨 하나님이 통치권을 다윗에게 (2b)
; 다윗 왕위 등극사 저자의 신학적 의견

; 다윗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선택한 자

- 기름부음 장면, 다윗 왕국의 성격 (3)
1) 북쪽 백성의 만장일치에 의해

2) ‘야웨 앞에서’ 진행, 하나님의 동의로 왕국 탄생
3) 다윗이 이스라엘 장로들과 ‘언약’ 체결

;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특이 행위, 왜 언약 체결이 필요했을까?
; 유다의 왕이 될 때는 필요 없던 행위

; 유다와 이스라엘이 합쳐 하나 왕국이 아니라, 한 왕 밑에 두 개의 독립 국가가

- 이중왕국
: 여전히 유다와 이스라엘은 독립적으로 나란히 공존 

: 다윗은 총 40 년의 통치 기간 중, 33 년간 두 곳을 다스리던 왕 (4)

V.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취한 조처들 (삼하 5.6-6.23)

1.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다윗의 첫 번째 조처

: 5.17-25, 블레셋과의 전쟁승리, 아마 예루살렘 정복 전
; 이후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에서 약체, 해안 평야 남쪽에만 머물게

: 왕국내의 가나안 세력 제거, 이스라엘 12 지파 이외의 영역에 새로운 수도 건설

- 예루살렘은 태고의 역사를 지닌 가나안의 도시
: 남과 북의 자유로운 왕래를 방해

: 골짜기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다윗 때까지 한 번도 정복되지 않음 (6)

- 예루살렘은 정치적 종교적 중립지
: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 지대, 정치적 통치와 알력 중재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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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가나안 종교 전통 소유, 야웨 종교와 아무 관련이 없다.

; 이스라엘 지파 동맹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

- ‘다윗 성’이라 명명
: 다윗 개인의 소유 

: 유다와 이스라엘에 이어 예루살렘에서 왕 등극
: 독립적인 도시 국가

: 지금까지 살던 여부스 족속 외에, 왕과 왕족, 왕의 측근, 용병만이 거주

- 5.10, 다윗 왕위 등극사의 결론적 메시지

2. 예루살렘으로 법궤 운송

- 새로운 주제, 예루살렘의 종교적 중심지로

: 다윗 왕위 등극사는 삼하 5 로 끝, 6 장은 새로운 주제
; 다윗의 천재적 선택,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 법궤는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종교적 상징물 
; 광야시대 이래 야웨의 임재와 보호의 상징

; 가나안 점령 후 법궤가 있는 곳은 중앙 성소

-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1) 가나안의 도시 예루살렘이 야웨 신앙 전통과 연결,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

; 하나님의 도시

2) 다윗 왕조의 정치적 기반 강화, 다윗 왕조에 대한 신학적 이념 제공

; 다윗의 도시에 하나님이 임재

; 그의 후손에게 까지, 다윗 집안과 하나님은 특별한 관계, 제왕이념

; 시 2, 20, 45, 72, 89, 101, 110, 132

; 고대 서아시아의 제왕이념+예언자 선포한 하나님의 약속, 이론적 근거 (삼하 7)

3) 이스라엘의 국가제의 (Staatskult) 탄생

; 왕의 통치 정당화와 안녕 보장
;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가 동일, 제의는 왕국의 정치에 예속

; 제사장은 왕이 임명 (삼하 8.15-18)
; 심지어 고대 서아시아 다른 국가처럼 왕이 제사장직을 (삼하 6.13, 14, 17, 18)

; 솔로몬 (왕상 8), 시 110.4

VI. 다윗 왕국의 특징

1. 왕국의 정치적 안정과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

- 사울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새로운 대내외 정책 마련

: 예루살렘을 새로운 정치 종교적 수도로
: 왕궁의 행정 기구 새롭게 조직 (삼하 8.15-18; 20.23-26), 국내 정치 안정

: 남은 사울 자손의 반역 근절
; 기브온 사람들에게 사울 가족 넘김 (삼하 21.1-14)

;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왕궁에 거주시킴 (삼하 16.1-4; 19.25-30)

- 전쟁
: 블레셋의 강력 세력 제거

; 많은 가나안 도시 점령, 동요르단 지역 봉신국으로
: 사울이 갖지 못했던 영토의 통일성 이룸, 

; 사울은 영토가 아닌 민족적 왕
; 가나안 도시국가들에 의해 갈라져 있던 유다와 이스라엘을 영토적으로 통일

; 국경선, 삼하 24.5-7,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대부분을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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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가나안 도시국가 정복의 단점
: 유다와 이스라엘의 튼튼한 민족적 결합 약화

;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를 가지고 흡수
: 다윗 왕국은 민족적 정체성을 잃으며 이질적 다양성을 지닌 왕국 

; 영토의 통일은 민족과 종교의 통일성 희생
: 본질에 있어 지리적이고 영토적 의미의 세속적 왕국, 더 이상 민족과 종교가 아닌

: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대립, 야웨와 바알의 대립은 민족간의 갈등이 아닌 다윗 왕국 내부의 갈등이
되어버림

- 이스라엘 동쪽 민족과의 전쟁 (삼하 8.1-14; 10.1-11; 12.26-31)

: 모압 군대 2/3 살육, 봉신 국가, 왕정 유지 그러나 조공
: 암몬족, 다윗 사신 경멸 했다가 파멸

; 아람인들 개입했다가 참패
; 후에 대부분 영토 다윗에게 편입, 조공

; 왕 폐위, 다윗이 스스로 왕관을 쓰고 생에 네 번째로 왕 등극
: 지리적으로 중요하고 자원이 풍부한 에돔 정복 (남자를 다 없애기 까지, 왕상 11.16)

- 전쟁과 영토 확장의 다윗 왕국 특징 

1) 매우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된 복잡한 정치 조직

; 더 이상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단일 왕국이 아니다.

2) 팔레스타인-시리아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최초 거대 독자 왕국

;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다른 전통, 문화, 종교의 여러 민족들이 참여

3) 한 위대한 개인 이루어 놓은 ‘다윗 왕국’

; 다윗은 군사적 정치적 천재
;  당시   이집트의  21 왕조는   분열,  바벨론   쇠퇴,  히타이트   이후  (1800-1200   BCE)
강력세력이 소아시아에는 없었다

. 동서 세력 사이에 공백

; 그가 의존했던 군대는 징집군이 아닌 개인 용병

2. 다윗 왕국의 내적 긴장들

: ‘다윗 왕위 계승사’, 거대한 다윗 왕국의 내적 긴장 보고

1) 다윗을 향한 예언자 나단의 비판

- 다윗과 밧세바의 결혼, 자녀 출산은 ‘다윗 왕위 계승사’의 핵심적 주제

: 계승자 솔로몬 탄생 했기 때문

- 다윗과 밧세바의 만남
: 암몬 사람과 전쟁이 있던 시기

; 전쟁은 대게 우기인 겨울 (10 월 말부터 5 월까지)을 피해 건기인 초여름에
; 더위에 궁전 지붕 위로 산책 중  

- 하나님은 부적절한 관계에서 난 아들을 심판

- 나단의 비난

: 고대 서아시아 에선 있을 수 없는 일
: 이스라엘 왕국은 비교적 허약한 토대 위에

2)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

: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났고,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둠

; 다윗 왕국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증거

a.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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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사사시대

:  M. Noth (1930) – Amphiktyonie (12 지파 동맹체)
; 종교적 동맹체, 법궤가 있는 중앙 성소에서 제의, 신앙 전통 유지

; 그리이스나 이탈리아에서 발견되는 부족 동맹체를 보고 비교

: Ch. Sigrist – 사회학적 연구

; Segment society –  힘있는 중앙 정부가 아닌,  동등하고 세분화된 여러 그룹들에

의해 움직임 

; 조직화된 영속적인 장치 체제가 존재 하지 않는다.
; 세분화된 이 사회를 하나로 묶는 것은 중앙의 행정조직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내적으로 결정화된 사회적 규범들

: 공적인 중앙 정부 부재, 12 지파로 분절되었지만 야웨 신앙으로 동등하게 자발적으로 연합되었던
사회

.

- 왕국기

: 동등성의 규범을 지속하려는 반왕권적 열정 저항이 있었다.
; 사울 때에도 (삼상 10.27)

; 전통적인 지파 조직을 대표하는 보수적인 자들

: 다윗과 솔로몬의 강한 중앙 집권화
; 현물 세금, 중앙 정부 통제의 군사, 강제 노역

- 인간을 억누르는 제도에 반항하는 ‘자유 의식’

: 솔로몬 사후 (926 BCE) 권력 집중과 남용 막으려는 강한 반대 세력 등장

; 특히 북왕국에선 반왕권적 투쟁 오랫동안 진행

b. 압살롬의 반란

. 반란의 역사적 위치

- 다윗 기간에 가장 심각한 반왕권적 반란, 압살롬과 (삼하 13-19) 세바의 반란 (삼하 20)
: 둘 다 국가 내부의 반란

: 위 두 반란과 솔로몬 사후 왕국의 분열 (왕상 12)는 서로 밀접한 관계
; 세바의 반란은 압살롬의 반란이 실패한 것과 관련

; 세바가 다윗에게 외친 투쟁 구호는 왕국 분열 때 다시 (삼하 20.1; 왕상 12.16)
; 왕국에 대한 근본적 비판

; 압살롬의 반란은 세바 반란의 전초전
; 백성들의 의식 속에 있는 지파 동맹 사상을 이용한 사건 (삼하 15.1-6)

. 반란의 배경과 진행 과정

-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

: 다윗은 8 명의 아내, 6 명의 아들을 헤브론에서, 13 명을 예루살렘에서 (대상 3.2-5)

; 삼상 3.2-5 와 삼하 5.14-16 은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이 11 명

: 암논, 다윗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 사이의 아들

; 이복동생 압살롬의 친누이 다말을 성폭행 (13.1-14)

: 압살롬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어머니) 2 년 동안 암논 암살 계획 후 살해

; 이스라엘의 상속법을 보자면 암논 제거는 압살롬 반란의 서곡
; 암논 다음 둘째 아들 길르압 (아비가일 아들)은 등장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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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어머니의 고향인 아람땅으로 추방, 3 년 방랑

- 압살롬 반란의 2 단계

: 요압의 도움으로 복귀, 친위부대 형성. 왕의 사법적 권한 침해 (15.1-4)

; 성문, 법정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의 마음을 훔친다 (15.6)
; 과거 지파 동맹 때의 평등성을 강조하며 동조 세력 확보 (15.4)

; 평등의 인사 (15.5) 

: 4 년동안 법적 문제 해결, 마치 소사사의 후계자처럼 행동, 통치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지지

- 반란의 3 단계, 헤브론에서 왕 등극 (15.10-11)

: 각 지파에 밀사를 보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음을 알림  
; 예루살렘 천도 이전 7 년 6 개월 동안 다윗이 왕으로 있던 곳, 다분히 의도적

: 남 지파들의 전형적 제의 장소 (참고, 창 13.18) 에서 서원 드리겠다면 신앙 자극, 지지
: 인심이 압살롬에게 (15.13), 다윗은 용병들을 데리고 요단 동편 마하나임으로 피신 

- 압살롬의 죽음

: 예루살렘 무혈 입성

: 그러나 이스라엘 징집 군인들이 다윗 용병들에게 패배
; 요압에 의해 죽음

. 반란의 역사적 의의

- 다윗 왕국의 거대 중앙 권력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번째 집단 저항 

: 남과 북의 광범위한 지지

; 압살롬이 아람 땅으로 추방 된 후 왕위 계승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분개

: 오랜 전쟁으로 인한 생업 중단, 조세 부담, 강제 노동, 권력 중앙화가 낳은 계층간의 갈등, 큰 사회
구조 변화 등이 백성들의 불만

, 압살롬에 동조 

- 다윗 왕의 계승사 저자의 “이스라엘” 사용 용례

: “이스라엘”이 유다와 짝일 때는 북쪽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이스라엘 왕국 전체 의미

; 11.1; 12.8; 14.25; 왕상 1.3

: 삼하 15-19
; 15.6; 16.15; 19.42 이하; 15.2, 10; 19.9; 20.14; 15.13; 18.17; 17.24, 26; 19.40-43

; 압살롬의 반란과 관련하는 ‘이스라엘’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
; 다윗 추종 군사들은 ‘백성’ (ם ַע)으로 (삼하 15.17, 23; 17.2, 3, 29; 18 장)

:  전체 이스라엘에 있었던 다윗 왕국 중앙 권력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불만을 이용한 전국적인
저항 운동

- 고대 지파 동맹 정신에 바탕을 둔 복구적 사회 저항 운동

: 현재 체제에 만족하는 이들에 의해 반란은 결코 발생 발생할 수 없다.
: 다윗이 체결한 ‘계약’ (삼하 5.3)의 정신을 따르려는 북쪽 지파들의 절대적 지지 

: 전통적 이스라엘의 자유와 평등 의식 회복시키려는 반란
; 15.1-6

: 다윗 왕위 계승사 저자는 압살롬의 반란을 가족 정치적 관점에 한정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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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압살롬 반란 실패의 결과

: 첫째, 남쪽과 북쪽 갈등 심화

; 압살롬 반란은 후에 세바의 반란으로, 결국 솔로몬 이후 왕국 분열의 씨앗

: 둘째, 남쪽 지파를 향한 다윗의 통치 방법 변화

; 북쪽은 여전히 다윗에 대한 의구, 절반만이 따름 (19.40)

;  남쪽도 거부,  그러나 다윗의 천재적 정치력으로 친족적 결합을 내세우고  (19.9-15),

남쪽에서 강성한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자 다시 왕 등극 

(19.14)

; 요압을 2 선으로 옮긴 것은 유다에 대한 근본적 정책 변화

; 개인 용병이란 군사적 우월성 포기
; 유다에 대한 억압적 태도 포기

; 친유다 정책 – 북쪽만 12 행정 지구 만들어 세금 거둠  

; 솔로몬의 친유다 정책 (왕상 4)

c. 세바의 반란

. 반란의 배경과 성격

- 반란의 목적이 불분명

: 왕위 차지? 단 지파에서 한 성읍 차지 그러나 왕은 아님
: 북쪽 사울 집안을 위함? 19.17-31 에서 다윗은 사울 가문에 받아들여짐

- 20.1

: 압살롬 죽음 이후 고대 지파 동맹으로의 회귀에 대한 갈망 다시 오름
; 이번에는 남쪽과 북쪽의 지역 대결 구조를 통해

: 다윗의 친유다 정책에 북쪽은 배신감

. 반란의 전개 과정

- 세바는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 ‘불량배’ (ל ַעַי ִל ְבּ שׁי ִא) – 왕국의 적대자들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

; 삼상 10.27; 25.17, 25; 대하 13.7; 삼하 23.6

- 20.2,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를 쫓는다

: 이 표현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온’이란 단어는 신빙성이 없어 보임
: 그 규모가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 오히려 세바 반란 사건으로 일어난 요압과 아마사 사이의 갈등이 부각 (20.8-13)

- 예루살렘에 돌아간 다윗의 조치

: 압살롬과 잠자리를 한 후궁들을 격리 (16.20-23)
; 훼손당한 왕권 회복

: 북쪽 지파들에 의한 반란을 군사적 행위로 진압하려

; 유다인들에게 군대 소집 명령, 아마사가 사령관으로
; 요압을 견제, 유다인과의 약속 이행 (19.13) 

; 유다인 징집은 이제 남과 북이 서로 대결해야 한다는 입장

- 20.6, 세바의 위협을 압살롬의 것보다 크게 여김
: 세바의 강한 군대가 아니라, 6 절 처럼 견고한 성읍을 이미 획득 했기 때문

; 왕권의 실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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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요압과 성읍의 지혜로운 여인

: 경쟁자 아마사를 죽인 요압, 세바를 뒤쫓는다
: 세바는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벧마아가의 아벨에서 포위당한다.

: 요압과 성의 한 여인과 협상, 세바의 목을 잘라 성 밖으로 던진다. (20.22)
: 성이 파괴될 상황에 성은 세바를 포기

; 성 사람들은 끝까지 왕의 군대에게 문을 열지 않음. 묵시적 저항!

. 반란의 역사신학적 의의

- 중앙 집권적 왕국이 설립 되었으나, 의식은 여전히 지파 동맹 시대의 자유 평등

: 사울 왕국은 고대 지파 연맹 정신
: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는 전혀 다른 방향

; 지파 동맹으로부터 독립적, 강력한 중앙 집권, 강한 개인 용병

- 세바의 반란 
: 왕국의 중앙 권력 (지배자) 과 이스라엘 구상원 (피지배자) 사이의 의식 차이

: 세바를 따랐던 북쪽은 그 저항 정신 유지

- 다윗 왕위 계승사
: 북쪽 지역은 결코 다윗에게 돌아선 것이 아니다, 억압적 굴복을 당한 것뿐

: ‘계약’ (삼하 5.3)은 파기

e. 요약

- 지파 동맹 시대
: 축제와 같은 제의의 거룩한 질서 속에

-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 지파 동맹에 독립적, 거대한 제국 건설로 고대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백성들은 새로운 정신에 저항, 옛 종교성을 유지하려

; 압살롬과 세바의 저항

CHAPTER 5 솔로몬 왕국

I. 솔로몬 왕위 계승의 문제

- 계승자 문제
: 두 번의 반란 후 다윗 왕국은 더 견고해 짐

: 그러나 내적 갈등 지속, 문재 해결은 훌륭한 계승자에 달려
: 나단의 신탁 (삼하 7)은 다윗 가문의 ‘영원한 왕조’ 선언

: 그러나 왕궁 안에 여러 당파 형성, 계승자 갈등
; 구 세력과 신진 세력의 갈등

; 최초의 계승이라 원칙이 없었다. 유능자? 장자?

1) 암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아들)
: 장자. 고대 상속법에 의하면 가장 유력한 계승자

: 이복 누의 다말 겁탈 후, 다말의 형제 압살롬에게 살해

2) 길르암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아들)
: 둘째, 삼하 3.2 는 길르압, 대상 3.1 은 다니엘

: 아무 언급도 없다. 일찍 죽었을 것?

3) 압살롬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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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셋째, 반란 후 요압에게 살해

4) 아도니아 (학깃의 아들)

: 최 우선 후보, 생존자중 가장 장자
: 다윗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 헤브론에서 탄생

: 다윗 말기 자신이 적법 계승자라 자처
; 자신의 친위병 50 명 증가, 병거 기병 준비

: 추종자 – 요압, 실로 출신 엘리의 후손 제사장 아비아달

; 아비아달 – 사울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의 제사장들 살육 시 다윗에게 피신.

다윗 예루살렘 입성 후 사독과 함께 대제사장

; 다윗의 오랜 협력자들. 보수적, 옛 이스라엘 전통 간직

; 백성들의 폭 넓은 지지 (왕상 2.15)

5) 솔로몬 (밧세바의 아들)

: 아도니아의 라이벌, 합법적 계승권 소유 하지 못함, 예루살렘 탄생

: 추종자 – 제사장 사독, 예언자 나단, 요압의 라이벌 용병대장 브나야, 시므이와 레이,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 

(왕상 1.8) 

; 사독은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전부터 그 곳 여부스족의 제사장?

; 예루살렘을 배경, 신진 정치 세력

- 두 세력의 충돌, 다윗의 신속한 결정
: 아도니야의 공개적 세력 규합과 축제 (왕상 1.5 이하)

; 음모나 반란이 아닌 결속과 과시
; 왕위에 올라 다윗과 함께 통치하려 

: 이에 솔로몬 추종자들의 신속한 대응
; 다윗에게 간청, 사독과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부음

: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솔로몬을 왕으로 선포

; 솔로몬은 아버지와 함께 공동 통치

- 솔로몬 왕위 계승의 문제점

1) 합리적이지 않은, 일종의 혁명

; 예루살렘 출신 신진 세력이 결집, 밧세바 이용, 정치적 음모에 의한 계승 
; 정통성 상실

2) 하나님에 의한 임명이 아님
; ‘하나님 영’의 임재 (카리스마) 없다.

; 사울과 다윗의 경우에 나오는 장로들이 나 백성들의 참여가 없다
; 왕궁 대신들의 협조로 다윗 혼자 결정  (왕상 1.43)

3) 야웨 성소가 아닌 기혼 골짜기에서 기름 부음 (왕상 1.45)
; 기혼은 샘의 근원, 가나안 제의와 관련, 가나안 신화의 중요 장소

; 사울은 길갈, 다윗은 헤브론에서 (삼상 11.5; 삼하 5.3)
; 야웨 종교 전통 버리고 고대 서아시아 왕국 형태로 변모

; 종교적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로

II. 솔로몬의 통치에 관한 역사 자료

-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기록, 왕상 3-11

: 일관적이지 않은 다양한 시대와 유래의 기록 모음
; 연대기적 진술, 다양한 목록, 일화, 설화, 신명기 사가의 해설, 솔로몬의 영화

; 솔로몬에 대한 다양한 시각 혼재 (신명기 사가, 포로 후기의 이상적인 상..)

- 많은 부분 ‘솔로몬의 행장’의 자료

; 다윗 – 왕위 등극사와 왕위 계승사라는 체계적 역사신학물 존재
; 순수 역사물 – 삼하 8 의 군사 정치적 조처와 흩어져 있는 단편 기록들

; 솔로몬 – 체계적인 역사신학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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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신명기 사가의 편집 구절들과 후대 편집 제외, ‘솔로몬이 행장’ (왕상 11.41)

; 신명기적 기록 – 성전건축 보고 (왕상 6-9.9), 삼하 7 과 밀접
; 솔로몬의 행장

; 다양한 주제들의 복합적 모음집일 것
;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실록

;  건축 보고  (왕상  6-7),  강제 노역  (9.15-23),  성전 봉헌  (8),  무역 정책  (9.26-28;

10.11-12), 재물 보고 (10.14-25), 관리 명단과 행정 구역 (4.1-5.8) 

- 신명기 사가의 저작

: 솔로몬의 행장에서 선택적 발췌, 정리

: 가장 주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성전 건축 (6-9.9)
: 솔로몬의 부와 지혜에 대한 전승 수집

; 국제 무역으로 부 축적; 지혜와 일화들 (왕상 3, 5, 10)
: 우선은 긍정적 – 지혜로운 왕이며 성전을 건축한 훌륭한 왕

: 그러나 부정적 결론 – 이방여인들,…
; 그의 사후 발생한 왕국 분열은 범죄의 결과

; 비정치적인 종교적 판단

III. 왕국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솔로몬의 조처들

- 솔로몬, 백성들의 지지 약하고 정치적 기반 불안. 실질적 정적 제거 (왕상 2)

: 요압과, 사울 집안의 사람으로서 압살롬의 반역에 참가하였던 시므이에 대한 피의 보복
; 다윗의 유언? 실질적으로는 솔로몬의 정적 제거를 위한 정당성 제공?!

1. 아도니야 당의 제거 작업 (왕상 2.1-35)

- 아도니야

: 아버지 다윗의 첩, 수넴 여인 아비삭을 부인으로 시도

; 밧세바에게 간청, 본래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하였다 (2.15)
; 아도니야의 간계? 간접적 왕위 주장?

; 압살롬도 (삼하 16.20-23)
: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알리고 솔로몬이 죽임

; 자신의 호의에 대한 배신 
; 브나야를 보내어 살해 (2.25)
 
- 아비아달

: 신명기 사가 – 아비아달의 추방은 한 익명의 예언자가 실로의 엘리 집안에 내린 신탁의 성취 (삼상
2.27-36)

: 솔로몬 측근인 사독 제사장의 라이벌

; 제사장직 파면, 아나돗으로 추방 (2.26-27)

; 제사장직에 대한 거룩함 때문에 죽이지는 못함

- 요압 (2.28-35)

: 왕상 2.5, 32 – 솔로몬이 요압을 죽인 실질적 이유 제시

; 요압은 이스라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유다의 군대 장관 아마사 죽임
; 아브넬은 자기의 동생을 죽였기 때문에 (삼하 3.27),

; 아마사는 질투로 인해 (삼하 20.4-10) 
; 솔로몬 자신과는 직접적 이유가 없다?

: 아도니야 편

; 아도니야 살해, 아비아달 추방되었다 듣자, 무서워 야웨의 장막으로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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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성서의 특권 무시, 솔로몬이 브나야로 하여금 살해

; 예의를 갖추어 매장, 동생 옆에 장사
; 브나야가 요압 대신 군대 장관

- 사울과 다윗 때 이런 정적 보복은 없었다

: 사울

; 비웃는 무리, 왕권 제도에 대한 반대파 (삼상 10.27)

; 암몬 무찌를 후 사람들이 그들을 제거하라 했으나 관용 (삼상 11.12 이하)

: 다윗 (삼하 19.16-23)

; 관용과 용서로 자신의 통치권 강화
; 아비새가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 죽일 것 요청, 그러나 죽이지 않기로 맹세까지

2. 사울가 제거 작업, 시므이 (왕상 2.36-46)

- 시므이, 사울의 직접적 후손은 아니지만 베냐민 사람, 북쪽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자 

- 압살롬의 반란 때, 피해 다니 던 다윗을 심하게 저주 (삼하 16.5-14)

: 다윗이 사울 집안의 원수라는 것, 그러나 다윗은 죽이지 않기로 맹세

- 솔로몬이 그를 예루살렘에 가두고 금족령 (2.36 이하)

: 바후림에 있는 고향과 단절
;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죽음

; 시므이와 베냐민 사람 단절 의도
; 베냐민은 세바 반란 때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 (삼하 20) 

: 3 년 동안 감금, 그런데 그의 두 종이 가드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로 도망

; 약화된 시므이 집안
; 가서 찾아 옴. 예루살렘 벗어났기에 살해

; 지리적으로 그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고, 힌놈 계곡을

: 남북 대결의 근원을 철저히 차단 하려는 솔로몬의 계획
; 북은 여전히 자신을 위협할 위험 세력

3. 여로보암의 반란 지압 (왕상 11.26-40)

- 솔로몬 재위 중반기 (재위 20 년경) 의 사건 (본문 자체는 마지막 부분에 위치)

: 9.24 – 반란과 관련 있는 밀로 건축은 바로의 딸을 위한 궁 건축과 시기적으로 비슷

; 밀로 건축은 솔로몬의 성전과 왕궁 건축보다 이후 일 것 

;  많은  노동력  동원,  남동쪽에  언덕  위의  다윗성과  북동쪽을  향하는  볼록한

지역의 만곡을 채우는 작업

- 여로보암

: 후에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된 후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된 자 
: 에브라임 출신, 어머니는 스루아 (ה ָעוּר ְצ: 문둥이)

: 밀로 건축과 다윗성 수축에 강제 동원, 용사이고 부지런 하여 운송 노역 감독
: 하지만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끼고 왕에게 반역 시도

: 반역 실패하자 이집트로 피신,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체류
: 그의 추종자 중, 예언자 무리 – 실로의 예언자 아히야 (왕상 12, 14.1-18)

* 여로보암 추종자들은…

1) 솔로몬의 종교 혼합주의에 강하게 반대한 보수 야웨 신앙 주의자, 실로의 예언자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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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예언자 아히야는 고대 지파 동맹의 성소인 실로와 결부
: 실로의 예언자 그룹은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친가나안적 종교 정책에 불만

; 블레셋에 의해 실로는 파괴되었지만 (삼상 4) 벧엘의 예언자 그룹처럼 (왕하 2.3) 집단

이루고 있었을 것  

: 솔로몬이 아비아달을 추방, 예루살렘 출신인 사독만 대제사장으로 세운 후 강한 불신

; 여로보암은 보수 야웨 종교 전통의 대변자 역할
: 단순한 남북의 정치적 갈등이 아닌, 정체성 상실한 솔로몬 왕국에 대한 종교적 저항

; 북왕국 예언자들은 왕국의 정치, 종교에 깊이 관여 비판
; 엘리야는 아합의 종교 개방주의에, 엘리사는 예후 혁명에 가담

: 실로의 예언자 아히야의 가담은 지방 성소의 전통 야웨 종교와 예루살렘의 혼합 종교 사이의 갈등
: 정치적 저항이면서, 종교적 저항 운동

2) 솔로몬의 강제 노역과 억압정책에 반발한 지파 동맹적 경향

: 다윗 시대보다 더 심화된 북 이스라엘의 강제 노역과 세금

; 다윗 – 예루살렘에 국한된 소규모 공사 (삼하 5.11)
; 솔로몬 – 성전, 왕궁, 밀로, 예루살렘 성, 하솔, 므깃도, 게셀 등 (9.15)

: 강제노역에 30,000 명의 이스라엘 사람 (왕상 5.13)
; 9.20-22 에서는 북이스라엘인을 ‘노예’로 부리지 않았다는 것, 강제 노역은 수행

:  가나안의 도시는  강제 노역에  익숙,  그러나  원래 이스라엘은  군역 의무는  있으나 강제  노역
의무는 없었다

. 솔로몬의 강제 노역 의무 부과는 엄청난 억압

; 솔로몬이 죽고 나서 결국 이문제로 나라 분열 (왕상 12.4)
: 자유와 평등의 북쪽 지파 동맹 추종자들의 반항

; 아히야가 외투를 12 조각으로 찢은 상징적 행위

3) 제도적이고 세습적인 왕국에 대한 거부

:  하나님의  임명,  카리스마   임재,  백성들의  민주적   동의가  있던   다윗  솔로몬과는   달리  솔로몬
왕국은 공직의 제도적 전수를 통해 보증되는 권위에 기초 
: 아히야의 상징 행위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자라는 암시?

4) 다윗 시대 이후 편입된 가나안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 

: 솔로몬 시대 활발해진 국제 교류는 시골출신 이스라엘 보단 도시출신 가나안에 혜택

; 가나안 사람들이 잘 적음, 뒤처진 이스라엘은 당연히 반발

IV. 솔로몬의 건축 활동

- 왕국 확대 보단, 방어에. 다른 국가를 점령하거나 공격한 보고가 없음. 통치에 부실

:  요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던 에돔의 왕자 하닷이 돌아와 에돔 왕이 되고,  에돔 일부 독립.
그러나 솔로몬은 아무 조처도 없었다 

(11.14-22)

: 아람의 르신이 다메섹을 점령, 그러나 솔로몬은 아무 조처 없었다 (11.23-25)

- 솔로몬은 다윗의 유업 보존, 문화적 확대
: 왕실의 명성 선전을 위해 건축과 외교에 몰두  

1. 왕궁과 성전의 건축 (왕상 6.1-7.51)

- 솔로몬 건축 활동 중 가장 자세한 보고는 왕궁과 상전 건축 

: 왕궁보고는 짧고 (7.1-12) 선전 건축은 길게 (6.1-36; 7.13-51)

: 다윗은 도성 안에 왕궁을 (삼하 5.11), 솔로몬은 지속적 수축 (왕상 11.27), 확장 계획

 

; 부지 확보와 예루살렘에 편입

1) 왕궁의 건축 (왕상 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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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왕궁과 성전은 동일한 지역에 건축. 커다란 뜰을 통해 직접 연결 (왕하 20.4; 23.12)

- 건축 구조상의 특징만 기술

: 13 년간 건축, 여러 개의 궁이 있는 종합 건물 형태

: 첫 번째 궁 – ‘레바논 백향목 궁’ (7.2-5)

; 네 줄의 백향목 기둥. 3 층 구조. 각 층은 15 개의 칸막이 방. 총 45 개 방
; 창고와 무기고 (왕상 10.17; 사 22.8)

: 두 번째 궁 – 기둥 홀 (7.6)
; 왕의 공무를 보는 넓은 방 

; 레바논 궁과 같은 50 규빗 (1 규빗은 45.6cm)의 크기
: 새 번째 궁 – 재판을 위한 홀 (7.7)

; 바닥과 천장을 백향목으로

: 위 세 궁은 왕의 본궁. 다음의 두 궁은 독립적 건물. 다른 뜰에 있기 때문. 이 뜰이 왕궁과 성전에
동시에 속하는지는 모름 

: 네 번째 궁 – 솔로몬의 거처 (7.8)
: 다섯 본째 궁 – 바로의 딸을 위한 궁 (7.8)

; 후궁들의 거처

: 종합 건물로서의 왕궁은 고대 서아시아에도 널리  

2) 성전의 건축

- 이집트에서 나온 지 480 년 되는 해, 솔로몬 재위 4 년에 건축 시작 (왕상 6.1), 7 년 동안 (6.38)

: 480 은 신명기 사가의 편집적 수 (12x40)

; 출애굽과 성전 건축을 연결,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 

: 지금 이슬람 성전이 위치하고 있는 곳, 이전 여부스 족의 산당, 일명 ‘원형 바위’
; 신 예루살렘 부지에 세워지던 왕궁과 공동으로 계획된 건축물

- 구조, 가나안의 종교 전통에 따라

: ‘현관-성소-지성소’, 길다란 구조, 우기 청동기 시대의 시리아 성전 건축 양식

: 끝의 어두운 지성소와 앞의 입구 구조는 메소포타미아 영향을 받은 시리아 건축 양식

- 솔로몬 성전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배운 도시 문화 산물

: 두로 왕 히람이 건축사와 백향목 보내 주었다 (왕상 5)

; 7.14  이방인 참여 비난을 모면 위해 히람의 모친이 이스라엘 사람임을 강조.  신학적
이유로 확대된 구절

?

: 시리아의 에블라 (기원전 2300)와 오론테스 유역의 텔 타이낫 (기원전 900)에서 3 분법 구조의

성전 발굴

- 규모

: 현관은 10(넓이) x 5(길이) x 15(높이)m 
: 성소는 10 x 20 x 15

: 지성소는 10 x 10 x 10

- 지성소

: 창문이 없는 어두운 밀실. 하나님이 임재 (왕상 8.12) 

: 고대 지파 동맹의 유물 법궤를 지성소에 안치

; 법궤는 가나안 신전의 지성소에 있는 신상을 대신 한 것

; 이스라엘 중앙 성소로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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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법궤
: 위에는 두 개의 그룹이 

; 감람나무로 만들어 졌고, 법궤의 수호자 (참고 겔 28.14, 16)
; 날개 달린 스핑크스 라마사티와 비슷

; 인간 얼굴을 한 황소, 메소포타미아의 성전과 궁전 입구에
 

: 출 25.18-22(P)

; 그룹은 서로 마주보고 날개로 ‘속죄소’ 곧 법궤 뚜껑 (1.25 x 0.75m) 덮고 있다

- 성전의 총 규모, 구조
: 길이가 35m 높이는 15m 넓이는 10m

: 성소와 지성소 사이는 나무 벽이 분리, 현관과 성소 사이에는 문이
: 성소 높은 곳에 창문. 공기 유통하고 햇빛 유입. 창문에는 덧문이

: 성소와 지성소에는 벽에 연접하여 3 층으로 된 골방들이 
; 제의 요원들의 숙소, 지성물들 보관 (참조 겔 42.13)

: 현관 앞에는 두 대의 청동 기둥 
; 오른쪽, ‘그가 세우다’ (ןי ִכָי), 왼쪽, ‘그에게 능력 있다’ (ז ַעֹבּ) (7.21)
; ‘안정성’과 ‘견고성’을 의미

; 이런 쌍둥이 기둥은 다른 문화권 신전들에서도 발견
: 레바논 백향목 궁의 절반 규모 (7.2)

; 성전이 왕궁의 부속 건물로 설계, 왕실의 예배 처소 
;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에도 성전이 왕궁에 예속

- 성전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님. 백성들의 제의는 성전의 바깥 넓은 뜰에서

2. 이방 성소의 건축 (왕상 11.1-13)

- 다윗은 위대한 정복가, 솔로몬은 위대한 외교가

: 정략 결혼을 통하여 700 명의 아내 (11.1, 3). 긴밀힌 외교

- 이방 아내들을 위해 이방 신전을 건축
: 시돈의 아스다롯, 암몬의 밀곰 (11.5), 모압의 그모스, 암몬의 몰록 (왕상 11.7-8) 

: 솔로몬의 혼합주의적 종교 정책
; 이방 아내뿐만 아니라, 비이스라엘 인들을 위함이기도

- 이방 성소 건축을 기록한 왕상 11 은 신명기 사가의 신학적 배열

: 솔로몬 통치 끝 부분에 있는데, 연대기적 배열이 아닐 것
; 재위 3,4 년째에 일어난 일 (3.1) – 바로의 딸과 결혼 한 때

: 통치 말기 배열은 신명기 사가의 의도적 편집
; 솔로몬이 처음에는 선왕이었으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불순종 (11.4)

; 왕상 3-10 은 솔로몬의 긍정적인 면, 11 장은 왕국의 붕괴
: 세 명의 반역자 소개

; 사실 다윗 때나 솔로몬 초,중기와 관련, 그러나 의도적으로 말년에 배열
; 에돔의 하닷 (21-22), 아람인 르손 (23-25), 여로보암의 봉기 

: 12 장에서 왕국 분열
; ‘불순종 (죄) 과 심판’이라는 신명기 역사가의 역사 해석

- 솔로몬의 죄

: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경고 무시 (11.9-10)
; 이어 벌어지는 왕국 분열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 제공 (2.4 참조)

3. 병거성과 마병의 성의 건축 (왕상 9.15-22)

- 가나안 많은 도시 안에 병거들과 병거를 끄는 말들을 위한 특별 단지 구성 

: 군사적 요충지에 (왕상 9.15-19)
: 고고학적 증거들도 발견

; 므깃도 (고대 가나안의 중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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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게셀 

- 왕상 10.26 - 1400 병거와 12000 마병들을 여러 병거성과 예루살렘에

: 상당히 큰 규모, 군사적 요충지에 배치
: 방어와 수비를 위한 것

; 군사적 위용 과시, 전쟁에서 실제 사용 기록 없다.

- 다윗과는 다른 솔로몬의 군사력

: 다윗은 병거가 아닌, 나귀나 노새
; 압살롬의 보고를 통해 짐작 (삼하 18.9)

;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병거와 기병은 전투용 아닌 과시용 (삼하 15.1; 왕상 1.5)
; 그의 군대는 단순한 보병

; 병거 이용 법도 몰라, 아람의 소바 왕 하닷에셀과의 전쟁 후 말과 병거 획득 하고 말의

힘줄을 다 끊어 놓았다 

(삼하 8.4)

4. 국고성의 건축 (왕상 9.19)

- 왕국 내적인 안정과 원활한 조세 제도의 집행을 위한 건축물

: 전역에서 올라온 공물 비축

- 다윗 때와는 다른 치밀한 국내 행정 조직
: 북 이스라엘을 12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 (왕상 4.8-19)

: 각 구역은 왕실의 한달 물자 책임 (왕상 4.7)
; 각 구역에는 ‘관장’이라는 책임자

: 이스라엘 전체 국고성 관리와 왕궁 공물 운반 총괄은 ‘관리장’이
; 솔로몬 시대에야 생긴 고위 관료 (왕상 4.5)

5. 요새지의 축성 (왕상 9.16-18)

- 솔로몬, 공격은 없었지만 방어는 철저

: 수비대와 용병 숫자 증강, 국경지대나 주요 교역 도시에 요새 축성, 확장

- 먼저 예루살렘 요새화, 밀로

: 도시 방어 시설의 일부 (11.27)

; 예루살렘 도시 중간에 있는 지붕이 납작한 건물. 방어를 위해 중요한 역할
; 예루살렘 남동쪽의 언덕 지대와 솔로몬의 왕궁 사이에 위치

; 상당한 노동력 동원. 다윗도 보축. (삼하 5.9 이하) 점령시 파손 때문
; 여부스 족이 이미 건설, 여부스족의 방어망을 유지하려 함

; ‘밀로 궁’은 다윗의 직업 군인들이 병영터로 이용
; 솔로몬 이후 매우 중요한 군사적 역할

; 새롭게 확장된 북쪽 지역에 세워진 성전과 왕궁을 방어
; 솔로몬이 새롭게 새운 예루살렘 성벽의 위치는 아직 모름

http://www.generationword.com/jerusalem101/17-millo-jebusite-wall.html

- 하솔, 므깃도, 게셀, 벧호론, 바알랏, 타마르 등도 요새화

http://www.bibleplaces.com/hazor.htm; http://www.biblewalks.com/sites/Hazor.html

http://www.bible-architecture.info/Megiddo.htm
http://www.itsgila.com/highlightsgezer.htm

6. 솔로몬의 건축 활동의 부정적 결과들

1) 엄청난 노동력 강제 동원. 백성들의 불만과 왕실에 대한 불신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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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왕상 5.13, 삼만명의 이스라엘인이 동원
; 다윗 때에도, 그러나 예루살렘에 국한한 소규모 (삼하 5.11), 이스라엘인은 배제

; 이스라엘은 본래 군역 의무는 있으나 강제 노역은 배제. 엄청난 속박 (왕상 12.4 참조) 
- 결국 솔로몬이 죽고 왕국 분열의 결과 초래

2) 재정적 결핍 초래

- 팔레스타인에 부족한 목재는 수입

: 두로와의 협약 – 왕상 5.1-12. 농업 생산물 강제 징발
- 다윗 때에 예속된 왕국의 조공과 통행세로 재정 보충 (왕상 10.15)

3) 솔로몬 왕궁의 사치. 유지를 위한 백성들의 재정적 부담

- 왕상 4.22-23, 왕실의 식료 양

: 일반 백성들은 행사나 절기가 아니면 육류 먹기 어려움 
- 왕상 4.6, 궁내대신

V. 솔로몬의 국제 무역

- 지리적 위치를 이용한 육로 무역 
: 팔레스타인을 통과하는 해안 도로와 트랜스요르단을 거치는 무역로 이용한 중개 무역

: ‘왕의 상고들’을 앞세워 중개 무역 

- 바다를 통한 해상 무역
: 지중해와 홍해를 무대로

: 두로의 히람왕은 솔로몬의 중요한 협력자

1. 두로의 히람 왕과의 무역 (왕상 5.1-12)

- 솔로몬 당시 페니키아 인들이 지중해 해상 무역 독점
- 솔로몬이 해상무역을 독점 하던 히람과 밀접한 무역 관계 맺고 국제 교역에 참여 (12 절)

2. 홍해에서의 해상 무역 (왕상 9.26-28)

- 속국인 에돔을 거쳐 아카바 만으로 진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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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에시온-게벨, 홍해 진출의 전진 기지

: 솔로몬이 항구 건설. 고고학적으로 증명
- 왕상 10.11, 22 – 오빌(Ophir)에 가서 각종 보화를 

3. 통과 무역 (왕상 10.14-15, 28-29)

- 통행세

: 이집트, 아라비아, 북부의 다메섹과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통과 해야 이집트와
무역 가능 

(14-15)

- 왕의 상고들, 솔로몬의 대리인 (28-29)

4. 솔로몬 국제 무역의 의의

- 팔레스타인은 천연 자원 부족. 솔로몬이 국제 무역을 통해 부 축척, 자신의 위상 격상

1) 국제 정치에 적극 가담

- 신속한 성장과 강대국 명성

2) 국내적으로는 심각한 부작용 초래
- 경제적 향상, 그러나 계층간의 갈등

: 국제 무역은 시골사람들에게 불리

3) 부유해진 대부분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나안 사람들
- 국제화 시대에 도시 출신 가나안 사람들이 시골 출신 이스라엘보다 빨리 대처

VI. 솔로몬 왕국의 특징

1. 국제 무대의 중심으로 도약

- 소아시아와 이집트 연결하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 최대 이용
- 당시 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던 두로의 히람과의 연대. 아프리카로 진출

2. ‘제도적’ 왕국으로의 완전한 전환

- 고대 서아시아의 왕국처럼 세습. 카리스마와 민주적 동의가 없던 왕

- 중앙 집권적 제도적 왕국

3. 친 유다 정책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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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기민석

- 이스라엘을 12 행정 구역으로 조직화 (왕상 4)

: 한달 씩 왕실 재정 부담 
: 남 유다는 포함 되지 않음

4. 야웨 종교의 정체성 약화

- 남북의 정치적 긴장. 종교 개방 정책

: 이스라엘의 불만 야기
: 이스라엘 전통 신앙 무시

: 가나안 화
; 예루살렘 성전은 시리아 성전 따라

- 법궤를 성전에 안치

: 이스라엘을 위한 조처
: 법궤는 12 지파 동맹의 전통

: 예루살렘의 이중적 역할 (가나안과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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