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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건축학부


DIVISION OF ARCHITECTURE

목원건축, 세계를 디자인하고 건축의 미래를 열다

B.O.O.K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 정*석

작성자 정** 작성일 2017.07.10 조회수188

페이지 213 ~ 215p

 

모든 사찰은 만민에 대한 사랑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는 안된다.

속담에는 집도 절도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오갈데 없는 살마이 최후의

수단으로 절에 의탁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절이 지나치게 세상과 가까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드 절에 의탁한다는 점이다.

즉 절의 대문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면 곤란하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선 속에서 성으로의 험난한 여과장치를 설치 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러한 여과장치들의 다양한 예를 들어 지고한 권력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트라는 고대 로마지방에서 섬겼던 태양신

 

건축의 네가지 요소

-뻐대,,토대,

 

건축이라는 것이 외형적으로만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전기배선,동선 난방 채광 등등

여러가지가 잘 설계되어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또한 포함되는것 같다.

하지만 완벽한 설계에도 완공이 되면 예상하지 못한 실수도 있고 여러 실패에 부딧힌다

그것 또한 교훈으로 삼고 여러 분야의 건축물을 짓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에세 시각은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정보량의 70~80%를 시각에 의존한다.

시각으로 느끼는 공간감은 너비와 높이의 비례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페이지 127~ 128

 

고층건물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엘리베이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하는

익숙한 공간이다.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잡담을 하다가도 막상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면 이야기를 멈추거나 목소리를 낮춘다.

어색한 침묵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야 다시 이전과 같은 음량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가장 어색한 경우는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있는데

귀퉁이는 이미 선임자가 점령하고 있어 더 이상 기댈 구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출입문 가까이에 서서 시선을 한껏 치켜 올린 채 층별 전광판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페이지 208 ~ 209

젊어서 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던 퇴역군인은 틈만 나면 당시의 일을 회억으로

늘어놓는다. 한때 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왕년의

여배우의 집은, 최전성기 때의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있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21세기 서울의 거리를 걷다보면 15세기 양식으로 지어진 중세 성당을 만나기도 하고,

콘크리트로 만든 서까래에 오색단청을 칠한 사찰 건물을 만나기도 한다. 혹은 18세기

궁궐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여러 건물들 이를테면 독립기념관의 겨레의 집이나

청와대 보관, 호암미술관 등을 만나기도 하고, 20세기의 콘크리트 건물과 21세기의

유리건물이 무척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 마치 20대 청년과 40대의 장년,

70대의 노년이 함께 어우러져 거리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 모두는 다른 시대를

살아 왔지만 자신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어느 한때의 시간에 묶여 있는 것처럼,

건물 역시 자신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때의 기술과 양식에 영원히 붙박혀

있다.

 

건축, 욕망과 권력을 말하다.

 

 

73~ 120 페이지

건축공학과 12****8 *

 

약탈과 전시의 건축.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후, 최초로 프랑스 박물관이 설립되고 뒤이어 스페인

프라도 국립박물관 , 영국 국립미술관, 독일 베를린의 구 박물관이 개관되었다.

원래는 귀족들에게만 비밀의방처럼 열람 되 오던 미술관 박물관 등 이 혁명

이후 시민들에게도 열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예술 작품 뿐 아니라 이시기가 되면서 귀족들만이 누리던 모든 문화를 민중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조금씩이나마 맛볼 수 있게 되면서, 레스토랑, 호텔, 극장, 도서관

같은 건물이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 후 왕실이 붕괴되고 그를 따르던 궁정사회도 함께 몰락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궁정요리사들이 시내에 음식점을 개업하면서 생긴 것이 레스토랑이다.

호텔 역시 본래는 귀족들의 저택인 오텔 파티큘리에를 이르는 말이었다.

이렇게 민중들이 여러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면서 가족 단위로 움직이게 되는 일 이

많아졌고,

호텔 보다는 저렴하고 휴식과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모텔 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된다.

 

가족단위 움직임에 보다 편리한 말이 아닌 마차가 등장하게 되고, 더 나아가

마차보다 가격이 싸고 빠르게 멀리 갈수 있는 자동차가 등장하게 된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말은 잘 이해가 안가지만 그 당시에는 말이나 마차가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만큼 가능한 일 이였을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이동하는 자동차안의 운전자에게 눈에 띄기 위해서 모텔들의

건축유형이 변화 하기 시작한다.

횡선의 강조, 강렬한 색상, 거대한 유리벽, 홍보용 수직탑, 커다란 간판, 둥글게

깎은 건물 모서리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이러한 빨리 알아볼 수 있는 건축

탄생하게 되었다.

건축물은 발주자가 요구하는 기능이 가장 중요시되며 구조와 미 가 뒷받침

되어야한다.

시대의 흐름과 당시 분위기에 따라 요구되는 건물들이 자연스레 생겨나게 되고

문명의 발전과 사람들의 관념에 따라 건물들의 모양새도 다양해 질 수 있었다는

점과 그 시대 상황을 대표해주는 건축물이 아직 보존되어 건축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감상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흥미로웠다.